*본 창작물은 실제 성이ㄴ비디오 산업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이에 날조와 캐붕이 심하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2018 솔리야 구뉴 교류전에 나오는 신간의 맛보기입니다.
“그만 둬 주시죠.”
일리야 쿠리야킨은 현재 상황에 대해 최대한 정중한 방식으로 자신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현했지만 상대방은 그런 일리야의 노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하던 행위를 지속했다. 일리야는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이성을 최대한 긁어모으며 한 번 더 말했다.
“그만하시죠? 나폴레옹 솔로씨.”
“오, 뭘 그만하라는 거지? 나의 일리야?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잘 모르겠는데?”
정말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솔로의 뻔뻔한 얼굴에 일리야는 당장이라도 솔로에게 달려들어 목이라도 조르고 싶었지만 어깨가 들썩이도록 한숨을 몰아쉬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는 그가 그럴만한 힘이 없어서도, 비폭력주의자라서도 아니었다. 지난 반년 간 질리도록 반복됐던 솔로와의 실랑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일리야는 누군가를 때리고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칙은 어디서나 통용됐다. 그랬기에 일리야는 지금까지 대부분 그리 해 왔듯, 솔로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말했다.
“10분전부터 제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는 당신의 손을 떼라는 겁니다. 얼굴을 뭉개버리기 전에.”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덧붙였지만 솔로는 그런 사소한 일 따위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로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좋아, 좋아. 이제야 조금씩 솔직해지고 있군. 하지만. 마법의 단어를 잊은 거 같은데?”
“흐으억?!”
일리야는 볼썽사나운 소리를 내뱉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일리야의 허리를 솔로가 한 팔로 감아 지탱해준 덕분에 바닥에 넘어지지는 것은 면했지만 앉아있던 솔로의 허벅지에 엎어지는 통에 잘못해 엉덩이를 맞는 아이와 같은 자세가 돼버렸다. 누군가는 분명 둘을 보고 야릇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일리야는 그런 방면에 있어서 백치에 가까웠기에 그저 차라리 넘어져서 코가 부러지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고 생각을 할 뿐이었다.
일리야의 심정과는 별개로 일리야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솔로의 손이 전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일리야가 넘어질 뻔한 이유도 바지 위로 일리야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솔로의 오른손이 바지 안으로 쑥하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솔로는 아예 편한 자세를 잡고 양손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일리야의 동그란 엉덩이를 위아래로 훑고 제 손아귀에 쥐어보기도 하면서 꼼꼼히 탐구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고이 지켜온 일리야의 순결을 지켜주는 것은 오직 얇은 천 한 장이 전부인 셈이었다. 이 뜨거운 손이 일리야의 맨살에 닿을 일은 결코 없겠지만 일리야는 제 등줄기를 타고 느껴지는 이 감각에 제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솔로가 알아차리지 못하길 바랬다. 일리야는 힐끗 솔로를 훔쳐봤지만 끈적한 손놀림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세금 고지서를 보는 듯 무표정했다. 일리야는 안도감과 동시에 왜 자신이 눈치를 봐야하는지 억울함을 느꼈지만 속으로 참자는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제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는 손을 떼 주길 부탁드립니다. 제에발.”
“잊어먹은 게 또 있는 거 같은데?”
일리야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귀를 의심했지만 솔로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지 않으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을러댔다
“어서 말해야지. 아니면, 이 시간이 즐거운 건가?”
솔로는 일리야의 봉긋한 엉덩이를 찰싹하고 가볍게 때렸다. 부끄러움에 연하게 물들어있던 일리야의 목덜미가 금세 시뻘겋게 변했다. 일리야가 화났다는 증거였다. 솔로는 속으로 ‘방금 전 행동은 하지 말걸’이라고 후회했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더욱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분명 보통의 사람이라면 관자놀이의 상처가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얼굴에 열을 올리는 일리야를 보고 움츠러들겠지만 솔로는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제 품안에 안겨 쳐다보는 일리야는 무섭기는 커녕 이를 악물어 살짝 부풀어 오른 저 뺨에 입 맞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이번에도 백기를 든 것은 일리야였다.
1970년 12월 18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발키리호’가 그린란드의 빙산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스타크사의 CEO인 하워드 스타크는 기자회견을 통해 세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 캡틴아메리카가 25년 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살아있다고 발표했다. 이 놀라운 소식은 미국 전역을 들끓게 만들기 충분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유명 일간지의 1면은 물론이며 라디오와 텔레비전 쇼, 할리우드의 영화까지 모든 언론에서는 ‘영웅의 귀환’ 이란 제목으로 캡틴아메리카에 대해 다루었다. 월스트리트 저널만이 미국의 주가상승에 대한 예측 기사를 썼을 뿐이었으나 그 또한 모두 캡틴아메리카의 귀환덕분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은 영웅의 귀환은 미국에 수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인플레이션과 연이은 주가폭락으로 인해 예측되던 제 2의 경제 대공황을 벗어날 수 있던 것은 물론. 소련과의 군비경쟁에서 간신히 우위를 점하던 미국은 그 격차를 벌려놓는데 성공했다.
특히나 전쟁영웅의 등장으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공화당이었다. 길어지는 전쟁 때문에 곤두박질치던 닉슨대통령의 지지율을 단숨에 치솟게 했고 캡틴아메리카를 베트남으로 파병해 전쟁반대론자들의 여론을 불식시켰기에 닉슨대통령의 재임이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캡틴아메리카, 미국을 또 다시 구해낸 영웅이었다.
2
“마리아 스타크라네.”
눈을 뜨자 잘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가 나를 향해 말했다. 폭탄을 실은 비행선이 뉴욕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린란드에 불시착을 시도 한 것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낯선 곳에 누워있었다. 얼떨떨하기만 해 멍하니 상대방을 쳐다보자 그런 나의 반응에 과장된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내 부인 이름이 마리아란 말일세. 마리아 스타크. 자네가 그랬지, 나는 평생 한 여자에게 정착하지 못할 거라고?”
그제야 나는 눈앞의 남자가 하워드 스타크라는 것을 알아챘다. 기억 속 ‘하워드 스타크’ 보다 더 깊게 패인 주름과 하얗게 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르고 있었고 입가에 걸려 있는 특유의, 자신만만하다 못해 종종 오만하다고까지 느껴지던 미소를 가진 것은 여전했다.
“좋아. 기억력에는 문제없는 것 같군. 그럼 나한테 빚진 10달러도 잊지 않았겠지?”
그의 말에 예전에 지나가듯 한 내기가 떠올랐다. 당시에도 무례한 내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가 먼저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했던 것이 먼저였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워드가 결혼을 할지 안할지에 관한 내기를 했었다. 이것으로 그가 하워드 스타크라는 것을 확신했다. 방금 깨어난 사람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할 만큼 뻔뻔한 이는 내가 알기로는 하워드뿐이었다. 그래도 그의 행동이 나름의 배려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놀랍군. 이 내기는 내가 이길 줄 알았는데.”
“25년이나 흘렀으니까. 덕분에 나한테 빚진 10달러의 이자가 제법 된다네. 그러니 내 돈 내놓으시지.”
하워드의 재촉에 나도 모르게 바지주머니를 뒤져보지만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제 보니 입고 있는 옷도 내 것이 아닌 가벼운 운동복이었다. 내가 난색을 표하며 나중에라도 꼭 갚겠다고 말하자 하워드는 기다렸다는 듯 두꺼운 파일 몇 개를 내게 던져주었다.
“융통성 없는 건 여전하네. 그 말 잊지 말게나. 이제 자네는 부자야. 나보단 아니지만.”
파일 안에는 내가 전쟁영웅으로 인정되어 대위(captain)에서 소령(major)으로의 진급명령이 적힌 서류와 전쟁 당시 지급되었던 채권들의 높아진 가치에 관련한 보고서들이 몇 장 있었다. 갑작스러운 실종과 고아였던 덕분에 가지고 있던 채권들과 연금이 내 명의의 연방은행에 고스란히 잠들어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워드는 격렬한 반응을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저 “0이 많군.” 이라고 말하는 게 고작이었다. 내 말에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하워드가 콧수염이 흔들릴 정도로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 그런 하워드를 보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웃고 나서야 하워드가 이번에는 작고 네모난 상자를 흔들며 말했다.
“자네가 잠들어있던 동안 일어난 중요사건들을 모아봤지. 비디오테이프라는 건데 영사기 없이도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네.”
그의 과학적인 설명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집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하워드는 열정적인 선생처럼 1970년까지의 역사, 나에게는 미래인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달을 걸었고 마틴 루터킹이라고 대단한 흑인이 있었지. 덕분에 이제 흑인과 백인이 결혼 할 수 있어! 좋은 일이지! 그리고 한국전쟁이 있었고 지금은 또 다른 전쟁이 한창이라네.”
한참을 줄줄 쏟아내던 하워드는 숨을 골라내더니 다른 서류파일을 꺼내들었다. 처음에 내밀었던 것 보다는 얇았지만 앞면에 써져 있는 이름을 읽은 순간 나는 말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게 자네가 가장 궁금해 하는 일이겠지. 페기카터 는 장군(General)이 되었다네. 최초의 여성장군이야.”
항상 그리워하던 그녀의 소식이었다. 스타크에게는 미안하지만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그녀, 페기카터였다. 그녀가 지금은 장군이 되었다니. 그녀가 지니고 있던 강인함이나 능력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었지만 내심 놀라웠다. 훌륭한 군인에 있어 남녀는 상관이 없음을 그녀가 증명한 것이다. 그녀야말로 하워드가 만들어 준 비디오테이프를 보지 않아도 시대가 점점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훌륭한 증거였다.
“지금은 두 아들의 훌륭한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라네.”
파일 안에는 너무도 행복해 보이는 그녀의 가족사진도 함께 있었다. 조금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페기와 부부를 반반씩 닮은 아이들, 그녀 옆에 꼭 붙어있는 남편까지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 이상적인 가족처럼 보였다. 나는 파일을 덮고 애써 말을 돌렸다.
“그보다 자네는 어떻게 지냈나?”
“나? 이제 유부남이지만 여전히 잘나가는 천재 무기개발업자이자 세계최대의 무기상이지.”
“이상한 엑스포를 열던 취미는 버렸고?”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하워드는 입술만 끌어올린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를 안 뒤로 처음 보는 서글픈 얼굴이었다. 조금 전만해도 패기 넘치던 청년의 얼굴은 순식간에 쇠락의 길에 접어 든 중년의 얼굴로 변모했다. 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피어올라 재만 남은 열정이었다. 나는 그에게 많이 변했다고 해야 할지 여전해야하다고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입을 다물고 말았다.
* * *
맨하탄의 빌딩 하나를 내주겠다는 하워드의 제안을 뿌리치고 브루클린의 작고 아담한 집을 골라 이사를 했다. 그의 호의는 고마웠으나 전구 하나까지 최신식으로 설계 되어있는 하워드의 빌딩은 불편하기만 했다.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요즘 물건들에 영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내가 잠들어있던 사이에 많은 것들이 생겨났다. 청소기, 세탁기의 발명으로 사람들이 할 일은 줄어들었고 컬러텔레비전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쟁 전 즐겨보던 영화 몇 편이 떠올랐다. 화려하기는커녕 흑백에 조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아직까지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런 옛날에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나 또한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었으니까.
방안에 들어서자 낡은 건물의 냄새가 났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과 구식 라디에이터가 뿜어내는 열기에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지자 피곤이 몰려왔다. 나는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다시 잠이 드는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잠은 이미 충분히 자두지 않았던가.
지난 25년간 끊임없이 꿈을 꾸었다. 버키와 놀던 어린 시절 꿈이나 레드스컬과 싸우는 꿈을 꾸기도 했다. 때로는 페기와 춤을 추기도 했다. 토요일 저녁의 스토크 클럽(stork club) 안은 종전의 기쁨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붐볐고 페기는 약속대로 나에게 춤을 가르쳐주었다. 어설픈 춤 솜씨에 그녀의 발을 몇 번이나 밟아도 그녀는 상냥하게 웃었다. 페기의 리드에 따라 블루스를 추었다. 곡이 끝나면 그녀는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날 선택해줘서 고마워요.”
그녀의 말에 그제야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깊고 차가운 바다 아래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그 꿈은 너무 달콤했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너무 잔인했다. 나는 아직도 자고 일어나면 지금 이순간이 꿈일까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