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ighbor
누구에게나 가슴 떨리는 첫사랑은 있는 법이다.
나의 첫사랑은 훌륭한 양아치였다. 양아치일 뿐 아니라 유명한 바람둥이였는데 얼마나 양아치인지 설명해주자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꼬마 시절부터 기호식품으로 과자와 사탕대신 담배와 술을 선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남들이 야동을 보면서 딸딸이 칠 때 저보다 다섯 살은 많은 과외누나, 교회누나, 옆집누나들과 함께 실전경험을 하는 아주 되바라지고 까진 양아치였다. 그런데도 내가 왜 이 남자를 좋아하는지는 내 인생의 아직 풀리지 않는 세 가지 궁금증 중 하나였다. (혹시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까 해서 말하는데 첫 번째는 토르가 내 형인 것이고 둘째는 맨델 제과점의 푸딩 레시피이다.)
내 첫사랑과 나의 형은 유치원에서 코 흘리던 때부터 지금까지 알아온 죽마고우(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알친구)로 자연스럽게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를 알아온 셈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의 사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연애사와 즐겨 하는 체위까지도 꿰고 있었는데 스토킹을 했다거나 그가 떠들고 다녔다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그는 양아치긴 했어도 자신과 잠자리를 했던 여자들에 관해서 떠들고 다니는 타입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커튼을 치는 걸 잊고 다니는 조심성 없는 면을 갖추고 있던 것뿐이었다.
그와 나는 이웃사촌으로 우리 집 다락방에서 그의 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구조였는데 다락방에서 책 읽기를 즐겨하던 나는 종종 그가 낯선 여자와 낯 뜨거운 일을 벌이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정말이지 그건 무척 짜증나는 일이었고 평소의 나라면 그에게 창문을 닫고 다니라며 냉정하게 충고를 했을 텐데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그가 여자가 침대위에서 옷을 벗은 채로 키스하는 것을 목격한 밤, 내 몽정의 상대로 그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게이란 것과 심지어 형의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었으니, 그의 무신경함이 한 청소년의 성정체성을 흔들어 놓은 셈이었다.
*
간만에 만난 그는 어른처럼 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여전히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있었다. 나를 발견했는지 그가 깜짝 놀라며 크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슬쩍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응답했다. 그는 주위의 여자들에게 귓속말을 하더니 깔깔거리는 그녀들과 헤어지고 나에게 다가왔다.
“로키! 여기까진 웬일이야?”
“나 대학 여기로 올까 하거든요. 학교 구경도 하고 겸사겸사 형 얼굴도 보고.”
“뭐? 너 공부 잘하지 않았어?”
“법대가려고요. 집에서 나오려면 전액장학금도 받아야 해서.”
아 그랬구나. 변호사나 검사가 되고 싶은 거야? 너랑 어울린다. 등, 그는 뭐 그런 이야기랑 토르의 안부, 고향소식을 두서없이 물어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답해주지 않고 삐딱하게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수다스러운 질문이 멈추자 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매번 어른스러운 척, 여유롭기만 하던 얼굴이 당황하는 모습이 제법 웃겼다.
“너, 담배도 피울 줄 알아?”
“이거 가르쳐 준 사람이 형이잖아요.”
어이없어 코웃음 치자 그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 모습에 순간 가슴이 설렜다.
“내가 그랬었나? 안 좋은 거 가르치고 되게 나쁜 놈이었네.”
그의 얼굴을 보니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았건만 과거 일들은 모두 잊어버린 듯해서 괜한 심술이 났다.
어릴 때는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옳아보였고 뭔 짓을 해도 내 눈에는 멋지게만 보였다. 그는 못하는 게 없었으며 아는 것도 많았다. 뭐, 그것도 몇 년 안가서 환상이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술을 처음 마셔본 것도, 담배를 펴본 것도.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모조리 그에게서 배웠다.
그는 매번, 안 돼! 라며 나를 단속하려는 형과는 달리 모든지 경험해봐야 는다며 내 편을 들어주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개새끼건만 그때는 왜 이리 멋있었던지. 그래도 덕분에 확실히 무엇이 내게 맞고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에게 수음방법을 가르쳐 준 것도 그였으며 내첫 수음상대도 그였다. 어쩌다 우리 집에 둘만 남았던 날이었다. 야한 잡지를 형한테 빌려주러 왔던 그는 야한잡지를 조달하는 것을 부모님께 이르겠다고 하는 나에게 입막음의 댓가로 좋은 걸 알려주겠다며 수음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문제는 그가 보여주는 벌거벗은 여자의 몸뚱이가 나오는 사진보다 그가 나의 몸에 와 닿는 체온에, 흥분으로 살짝 붉어진 그의 얼굴 때문에 사정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주제에 뭐? 그랬었나?
“끊은 지 좀 됐는데 피우는 거 보니까 나도 땡긴다. 나도 한 대만 줄래?”
나는 끄덕이며 담배를 건네주었다. 그가 살짝 반색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는 그가 즐겨 피우던 담배브랜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브랜드를 지금 내가 피우고 있으니까 잊을 수 없지.
담배를 입에 문 그가 습관처럼 주머니를 뒤적였는데 금연했다는 말이 진짠지 라이터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가까이 가져다대 그의 담배에 불을 옮겼다. 고개를 모로 돌려 다가가면서 모양새가 키스를 연상시킨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가까이 다가간 그에게서 여자들의 화장품 냄새와 함께 익숙한 향수냄새가 맡아졌다. 이 향수냄새. 그의 졸업식 때 내가 사준 향수의 향이었다. 무겁지 않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향기. 이 향을 맡자마자 그에게 정말 어울리는 향이라고 생각했다. 왜 아직도 이걸 쓰고 있는 거야. 약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이 향수 쓰는구나.”
“넌 아직도 우아하네.”
그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어린애취급을 했다. 나도 컸다구요, 따위의 유치한 말을 내뱉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졸업하는 날. 나는 그에게 그가 즐겨 쓰던 향수를 선물했다. 그때 그가 선택한 학교는 집에서 아주 먼 곳이었다. 그는 형이나 다른 친구들과도 떨어진 대학교로 진학하기로 했는데 그것은 그를 언제나 옆집에서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고백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아마 좋아하는 거 같아요. 아니, 좋아해요."
나는 얼굴도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에게 고백했다. 어차피 잘 보지도 못 할 텐데 차여도 그만이었다. 사실 잘 되면 장거리연애는 어렵다고 하는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건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아직 니가 어려서 착각하는 거 같아. 없던 일로 할 테니까 비밀로 하고 전처럼 잘 지내자."
시발. 진짜 어이가 없었다. 나를 어린애로 보는 건 여전했다. 차라리 취향이 아니라거나 남자가 싫다고 욕이라도 했다면 단념했을 텐데. 그래서 미련이 남아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나는 그 답지 않게 당황한 모습을 보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
나는 형과 세살차이가 났는데 그 말은 나와 그의 나이차이가 세 살이라는 뜻이었다. 3년이란 차이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굉장히 짜증나는 었다. 어차피 늙으면 거기서 거기일 텐데(예순 세 살이나 예순 살이나 다 할아버지.) 내가 한참 유치원을 다닐 때 그들은 초등학교에 다닌다며 놀아주지 않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더니 머리가 컸다고 뻐겼으며 중학생이 되자 그들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특히나 내가 한참 스쿨버스를 타고 다닐 때 면허를 딴 그들은, 중고였지만 빨간 스포츠카(토르는 이 차에 묠니르라는 애칭까지 붙였다.)를 타고 지나가는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나이 차이에 화딱지가 나곤 했다.
매번 이런 식었기에 나는 그가 졸업하는 것이 가장 걱정이 되었다. 학교에서 보지 못하는 건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옆집에 사는데, 어떻게든 보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다만 안 그래도 나를 어린애처럼 보는 그가 졸업을 해서 성인이 되면, 미성년자일 나를 어떻게 취급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좁아지지 않은 격차로 인해 나는 조바심이 났다. 가장 열 받는 일은 어쩌면 그가 영원히 나를 어린애로 볼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정말이지, 지가 나를 낳았어? 아님 키웠어? 이런 말을 하면 제 손으로 기저귀를 갈아줬다고 말하겠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애들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주제에 나를 키웠다니. 나는 언젠가는 자기한테 효도하라고 헛소리를 늘어놓는 그의 엉덩이를 힘껏 차주겠다고 마음먹었다.
*
"오늘 어디서 잘 거야?"
"형 집에서 재워주면 안 돼요? 예전처럼 노는 것도 그립고."
그가 피식하고 웃었다.
"언제부터 나랑 놀고 싶어 했다고."
맞는 말이었다. 어릴 적에는 그들이 나와 같이 놀아주기를 원했는데 조금 커서는 나를 내버려두었으면 했다. 그들은 부모님이 자주 자리를 비우는 우리 집을 제 아지트마냥 여기고 놀러왔는데 가끔씩 피자를 시켜서 위조 신분증으로 사온 맥주를 마시곤 했다. 나는 형과 그 친구들이 놀러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한테 혼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싫었고 천성적으로 떠들면서 시끄럽게 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모이면 경찰이 들이닥치지 않는 게 용할 정도로 시끌벅적했기 때문이었다. 형은 무심했기에 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고 매번 나를 끌고 가 무리와 어울리기를 강요했는데 억지로 그들과 놀다가도 끝에는 도망치듯 내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래도 가끔씩, 그가 내 방문을 두드리고는 들어와 나를 다시 불렀는데 그럴 때면 나는 못 이기는 척 다시 그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나는 형의 친구들 중 그가 나를 불렀다는 것에 대해 설렜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호건은 형의 친구치고는 똑똑하고 상냥한 편이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고 나 또한 물론 그랬기에 친해질 일은 없었고 볼스테그는 어떤 면에서는 토르보다 더 단순하고 무신경했기에 나를 돌보는 몫이 자연히 그에게 돌아간 것은 당연했다. 나는 그가 내 형이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농담처럼 자신들과 인기 있는 남자들과 어울리는 걸 영광으로 알라며 웃었으나 사실 나는 토르나 그 무리들이 학교에서 인기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집에 와서는 매일같이 팬티바람으로 소파에 누워 유치한 텔레비전 쇼를 쳐다보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부러워하는 반 아이들에게 우리 형, 니네가 좀 가지고 가라.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다만 그들이 운동경기에 나갈 때만큼은 예외였는데 토르와 그를 포함 네 사람은 모두 미식축구팀의 주전이었다. 토르는 쿼터백, 호건은 윙맨, 볼스테그는 센터, 그는 리시버로 활약을 했는데 어릴 적에는 그들이 내심 자랑스러웠으나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토르의 동생이란 이유로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며 내가 형보다 못하며, 심지어 공부벌레라는 것에 실망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 때문에 나는 점점 커가면서 형과 그 친구들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들 무리에 내 자신이 가려지는 것에 불만을 가졌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형뿐만 아니라 그까지도 피해 다녔는데 내 심정을 눈치 채지 못 했던 형과는 달리, 그는 집근처에서 마주 치면 언제 서먹했냐는 듯 다가와서 내게 다가와서 시답잖은 말 한마디를 걸고 가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언제부턴가 집에 여자를 데리고 왔는데 그럴 때면 나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아마 그때도 어렴풋이 그의 여자친구에게 질투를 했던 것 같았다. 그런 다음날이면 그가 내게 다가와 슬쩍 “공주님, 어제는 왜 안보였어?” 라고 놀리면 최대한 쌀쌀맞은 태도로 여자 향수냄새가 역겨웠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는 여자들에게 잘 먹히던 미소로 “여자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돼, 여자는 마음이 여려서 상처받아.” 라며 충고 아닌 충고를 했는데 그러면 나도 상처받는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그래도 몇 번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그가 여자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이 없었다. 그건 아마도 나를 신경을 써준 거라기보다는 형과 그 친구들이 노는데 여자가 끼면 재미없다고 불평했기 때문일 것인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
"짐은 이게 다야?"
"조금 있다가 이 쪽으로 이삿짐센터 오기로 했어요."
약간 당황한 얼굴이 된 그는 내게 농담하지 말라며 내 집네 둘이 살만한 공간은 없다고 속사포로 내뱉었다.
"무슨 착각하는 거예요. 나도 나 차버린 사람하고 같이 살 생각은 없어요."
그의 몸이 움찔하고 튀어오르는 게 다 보였다. 오늘 하루 동안 그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을 다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 나는 그의 반응을 즐기며 천천히 말했다.
"옆집으로 이사 오는 거예요. 예전처럼 이웃사촌해요."
싱글거리며 웃는데 갑자기 벽으로 밀쳐졌다. 맞는다고 생각한 순간 입술에 따뜻한 것이 닿았다 떨어졌다. 연인과의 키스라고 하기엔 너무 조심스럽고 친구동생과의 키스라고 하기엔 너무 뜨거운 키스였다.
"너, 너 말이야. 내가 어떤 마음으로 떠났는데. 너 진짜...왜 날 이렇게 힘들게 해…."
언제나 여유롭게 웃기만 하던 그가 나를 보며 잔뜩 괴로운 얼굴을 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다가 그의 엉덩이를 힘껏 차주었다. 악하고 소리 지르는 그의 목을 끌어당겨다가 깊게, 평생 동안 하지 못한 만큼 몫의 키스를 해주었다. 정말이지, 이런 한심한 남자에게 반하다니.
"언제부터였어?"
"처음 봤을 때부터?"
"..형 수법 다 아니까 솔직하게 말해."
그는 억울하다는 듯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부모님에게 나를 자기 동생으로 달라고 졸랐다고 했다. 그의 계획은 토르로 인해 깨졌지만 형이될 수없다면 평생 옆에서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고백한 순간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니가 착각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너한테 성적인 걸 보여줬으니까 헷갈리고 있는 게 아닐까. 널 속이고 있는 게 아닐까 했어."
그게 다 계획이었구나! 정말 덫에 걸린 느낌이 들어 나는 다시 한 번 더 세게 그의 엉덩이를 걷어 차주었다.
"그..그만해! 진짜 아프다구! 그럼 넌 내 어디가 좋았던 건데?"
내가 그에게 반한 계기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어릴 때의 일로 나는 그날따라 형의 배려심 없고 무심한데에 질려있었다. 십 수년을 같이 산 주제에 내가 토마토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을 모르고 내게 자기가 만들었다며 토마토 스파게티를 억지로 먹였다. 자주 있었던 일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나도 모르게 서러워져서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에 못 이겨서 소리치고 발을 구르면서 난리를 치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두드러기가 나서 엉망이 된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토르나 그 친구들이 알게 되었다간 분명히 놀림만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를 구해준 게 그였다. 언제나처럼 내 방에 들어와 나를 달래주려다가 내 꼴을 보더니 놀리기는커녕 아무도 모르게 약을 사가지고 와서 주었다. 덕분에 토르는 내가 직접 토마토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하기 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어쩌면 그때부터 내가 그를 좋아한 걸지도 몰랐다. 나는 알고 있었다. 금발의 미남이란 이유로 가볍게 보일 때도 있지만 실상은 굉장히 배려심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겉보기에는 양아치에 바람둥이긴 해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그런 점을 좋아했다. 그러나 내가 그 이유를 말하는 날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건 그동안 나를 힘들게 한 벌이니까.
----------------
예특으로 썼던 펜드럴로키.
헤헤헤. 얘네들은 이런 낯간지러움이 좋아, 어울려.
'글 > 짧'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팁로키] 피핑톰(peeping tom) (0) | 2018.05.06 |
---|---|
[스팁로키토니] night, night (for.듀공님) (1) | 2015.01.19 |
[배너로키] Trick or Treat!" (0) | 2014.10.31 |
[헌트니키] 제임스 헌트 (0) | 2014.04.12 |
[헌트니키] runner (0) | 2014.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