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편

글/썰 2012. 10. 31. 12:26

"거기, 공 좀 던져줄래?"

토르가 보이지 않게 된지도 벌써 여러 날이었어. 로키는 드디어 토르가 자신을 질려한 것 인 줄 알고 마음이 좋지 않았어. 그러나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자꾸 그리워졌어. 그래서 그런 생각을 떨치기 위해 병원의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가 자신의 발치로 굴러온 야구공을 보게 된거야. 야구공을 주워들고 주위를 둘러보자 금발의 장신인 청년이 선한 미소를 지으며 로키에게 소리쳤어. 그의 금발을 보니 로키는 토르가 떠올랐어. 마음이 오묘했던 로키가 아무렇게나 공을 던져 이상한 방향으로 공이 날아갔어. 그러자 금발의 청년이 수풀을 헤치며 공을 찾았어. 그는 다리를 절고 있었는데 기브스를 하고 있었어. 그 기브스에는 친구들의 글인 듯 빨리 나으라는 애정어린 인사가 빼곡히 써져있었지. 기브스까지 한 사람이 공을 찾고 있자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로키가 그의 옆에 앉아서 공을 같이 찾아주기 시작했어. "찾았다!" 금발의 청년은 기쁜 듯 웃었어. 그리고 로키에게 손을 내밀면서 감사인사를 했지. 그의 웃음은 토르만큼 환했지만 좀 더 차분한 것 같았어. 로키는 뭐라도 홀린 듯 정중하게 내밀어진 그의 손을 잡았어.

"같이 찾아줘서 고마워. 나는 스티브라고 해. 너는?"

"...로키."

그것이 스티브와 로키의 첫만남이었어.

 

그렇게 만남을 가지게 된 로키와 스팁은 어느새 산책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어. 스티브가 어린아이들과 캐치볼을 하고 있으면 로키는 어느샌가 그 근처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었지. 스티브가 캐치볼을 끝내면 로키가 와서 목발을 챙겨들고는 말하고는 했어.

"다리도 다쳤으면서 무슨 캐치볼이야."

그러면 스티브가 "이 정도 핸디캡은 있어야 재미있지." 그러면 로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어. 그리고 서로 잠깐의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를 했어. 스티브와 로키는 관심사가 비슷해서 말도 잘 통했어. 스티브는 다친 곳이 없어 보이는 로키가 왜 병원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마른 몸이나 파리한 안색을 보며 뭔가 큰 병인가 싶어서 말을 하지 않았어. 그러나 마음이 아팠지. 그래서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고 자꾸 보듬어 주고 싶었어. 자신의 성격이 약자에게 약한 것이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배는 더 마음이 쓰였어. 로키가 아주 드물게 살짝 미소를 지으면 너무 기분이 좋았어. 책을 읽다가 아름다운 문장이 나왔을 때면 로키는 미소를 지었어. 아무도 자신을 지켜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뿐이었지만. 그런 점들은 언제나 로키를 관찰하던 스티브는 알아차렸어. 주변에 누군가가 있으면 언제나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야. 가시를 잔뜩 세운 로키를 보면서 스팁은 더 다가가고 싶었어. 그래서 로키가 읽는 책의 제목을 보고 책을 읽고 말을 걸기도 했고 다른 것들도 추천을 해줬어. 역시나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로키는 그런 대화를 좋아했어. 둘은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었어.

 

어느 날 로키는 스티브에게 어쩌다 다리를 다쳤냐고 물어봤어. 처음 있는 일이었어. 음악, 책 등 관심사가 아니라 스티브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표하다니. 스티브는 내심 기뻤어. 그리고 강도를 쫓다가 다친 사실을 말해주었어. 로키는 대체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한거야? 라고 물었지만 스티브는 그냥 웃음을 지으면서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고 말했어. 좋은사람. 스티브를 보면 자꾸만 토르가 생각났어. 로키는 자신이 얼마나 스티브에게 빠져 있었는지와 점점 토르에 대한 감정을 자각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스티브를 보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어. 어차피 이제 곧 대학교에 입학할 시기도 오고 있었고 어차피 스티브와 로키는 통성명정도 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관 없으리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로키는 스티브에게 말도 없이 퇴원을 했고 로키는 더 이상 마음 속에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이미 입학식은 지났지만 로키는 배정받은 기숙사에 들어가 로키는 그러나 짐이 금세 *greek fraternity로 옮겨졌지. 오딘은 로키를 절대로 오딘가문의 적자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오딘의 둘째아들이라는 사실은 어느새 암암리에 퍼져있었기 때문에 소셜클럽에서 로키를 받아들이기로 한거야. 로키는 어딜가나 똑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하면서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그리고 곰곰히 생각을 하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이들을 사귀는 것이 나을까? 하고. 결론은 yes였어. 분명히 또 다시 대학생활 내내 힘이 들테지만 그들과의 소셜네트워크를 구축해두면 나쁠리 없다고 결정을 내렸어. 그렇게 자신의 짐이 있는 방에 들어가서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어.

"도와줄까?"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기브스를 풀었는지 상큼하게 웃고 있는 스티브였어. 로키는 놀랐어. 왜 그가 여기 있는거지? 스티브의 등장에 로키는 깜짝 놀랐어. 당연히 하루만 보고 말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당황하는 로키는 아랑곳 하지 않고 스티브는 로키의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

"...주세요."

"대체 왜 아무 말 없이 간거야.내가 얼마나 많이 찾았는데. 오 맙소사. 내가 무슨 생각까지 했는 줄 알면 놀랄거야."

스티브는 여전히 짐을 한 방으로 가져가 옮겨. 로키는 스티브를 돌려세워놓고 짐을 손에서 뺏어들었어.

"혹시 날 스토킹 한 건 아니죠?"

"글쎄?"

스티브가 그로써는 드물게도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어.

"스토커라면 신고할거고."

"아니라면?"

"...시비 걸 생각이라면 밖에 나가서 싸우죠."

"클럽 내 회원끼리는 싸움 금지야."

스티브가 멍해 있는 로키에게 다시 짐을 뺏어들고는 말했어.

"난 스티브 로저스. 시니어고 이곳 제우스의 회장이지. 잘 부탁해. 신입생."

스티브는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로키의 이마를 살짝 밀면서 말했어.

"신입!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하지만 여전히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지. 로키는 그가 같은 대학에 다니는 것과 그것도 소사이어티회장이라는 것에 놀랐어. 자신이 알고 있던 스티브는 굉장히 상냥하고 오만하지 않으며 소탈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너무 당연하게 평범한 학생이라고 생각했던거야.자신을 속인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 소사이어티의 회장이라면 자신을 뽑았을테고 어쩌면 입학 전부터 그러니까 병원에서 만났을 때부터 자신이 어떤 놈일지 알았을 가능성이 있었어. 로키는 이로 입술을 짓이겼지. 다시 배신감이 들었어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어.

". 명심하도록 하죠. 회장님."

스티브는 난처한 듯 웃었어.

"진짜 몰랐구나. 내가 여기 회장이란 걸...나야말로 당황스러운걸? 제법 크게 기사가 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로키에게 스티브는 멋적다는 듯 머리를 긁으며 말했어.

"명문대생 강도를 때려잡다! 이시대의 젊은 영웅!...몰라?....그랬구나"

자화자찬을 한 것 같아 쑥스러워진 스티브가 말했어.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그날의 사건때문에 입은 부상으로 클럽일을 제대로 못했어. 그래서 어제서야 니가 우리학교에 입학한다는 거랑 클럽멤버로의 자격이 있다는 걸 알았지."

스티브는 덧붙여서 니가 후배란 걸 알았음 더 잘해줬을거다 라는 둥의 이야기를 했어. 로키는 그를 쳐다보다 내뱉었어.

"그럼 지금은 제가 누구의 아들인지도 아시겠네요?"

"응 알아 오딘 썬."

스티브는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했어.

"저는!"

뭐라 반박하려는 로키의 말을 막으며 스티브가 말했어.

"그리고 또 뭐가 중요한가?" 로키는 아무말하지 못하고 스티브를 바라보았어. 저 푸른 눈은 거짓이 없었지. 로키는 등을 돌려 나가려고 했어. 그러자 뒤에서 스티브가 말했어.

"오늘부터 나랑 한방이야 잘부탁해. 룸메이트"

 

어쩐지 방은 신입생이 쓰기에는 너무 좋아보였지. 하지만 보통 회장이라면 프라이빗을 위해 혼자 쓸텐데? 궁금해하는 로키에게 스티브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어.

"? 아니 공사중인 방이 있고 방배정을 하다가 방이 모자르다고 해서! 분명 1차명단은 사람수가 딱 맞았었는데...절대 이상한 생각하지말고..아니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허둥대는 스티브를 보니 대충 무슨 상황인줄 알앗어. 분명 로키-라우페이였던 자신은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을거고 후에 오딘의 아들이란 것 -그것이 비록 반쪽짜리 일 뿐이지만-을 알게되었을 때 서야 그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사정을 로키는 금세 알아차렸지만 대체 이 남자가 얼굴을 붉히며 횡설수설하는지 몰랐어. 어쩌면 이 상냥한 남자는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랐다는 생각에 미치자 로키는 더욱 쿨하게 받아치기로 마음 먹었어.

"..그럼 침대는 어디있죠?"

"! ...그게... "

"설마 침대도 준비가?"

"면목이 없다. 그래도 내 침대는 킹사이즈라 둘이 자도...아니..그러니까....후우..아냐 난 밖에서 자고올게..."

그제야 로키는 대체 저 남자가 자신의 앞에서 허둥되는 이유를 알아차렸어. 원래라면 로키는 자신을 여자 취급하는 듯한 행동에 주먹을 날렸겠지만 그 모습이 좀 바보같기도 했고 악의는 없는 듯해서 그냥 웃었어.

"무슨. 그러다 신입생주제에 회장을 쫓아냈다고 가십에 휩싸이가 쉽다고요. 같이 자면 되죠. 같은 침대에서 둘이서."

스티브에개 천천히 다가가 귀에다 속삭여주었다.

"뭐 어때요... 같은 남자끼리! 안그래요?"

유혹적이었다 급격히 밝아지는 목소리에 자신을 놀린다는 것응 깨닫고 스티브가 로키의 머리를 잔뜩 헝크러트렸어.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로키는 고민했어. 대체 키도 크고 음침하게 생긴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거야? 남들에 대해서 잘 아는 로키는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평가는 무척이나 인색했지. 로키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미뤄두기로 하고 이내 자신의 짐들을 스티브의 방에 옮기기 시작했어.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짐들을 자기 편한대로 놓기 시작했어. 로키 나름의 심술이었지만 스티브는 사람좋은 미소를 띈 채 로키의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줄 뿐 아니라 로키에게 뭐 더 필요한 것 없냐며 물어보았어. 로키는 스티브의 이유없는 친절에 살짝 경계했어. 로키가 살짝 비아냥 거리며 물어봤어.

"원래 이렇게 남한테 다 퍼주는 스타일이에요?"

"? ...그냥 뭐.. 원래 이정도 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스티브가 자신도 잘 모르겠는지 머리를 긁적여. 클럽회장주제에 너무 얼빠져 보이는 스티브에게 로키는 코웃음을 쳐. 분명히 저 정도 자리에 오르려면 학업은 물론, 인망도 있어야하며 손에 꼽히는 재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거야. 그런데 저렇게 쓸개 빠진 모습이라니.저렇게 보여도 분명히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야, 라는 식의 의문을 품게 되지. 로키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호의를 믿지 않었어.사실 어쩌면 토르와의 만남 이후로 모든 만남에 날을 세우게 된 것 같아. 더 이상 사람의 애정을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없었어. 그러나 사실 한번 열린 마음은 계속해서 애정을 갈구하게 되는 법이었지. 로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그리고 잠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옷을 벗었어. 그러자 스티브가 화들짝 놀라며 방 밖으로 나가버렸어. 여전히 스티브의 반응은 이해되지 않았어. 여자를 대하는 것 처럼 구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러나 조금있다 스티브가 정중하게 노크를 하고 들어와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는데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던 로키는 한숨을 쉬고 말했어.

"스티브. 난 여자가 아니라고요."

"그건....나도 알아. 다만..."

스티브는 말을 골라내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결국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는지 체념한 표정으로 조그맣게 말했어.

"니가 좀...예쁘게 생겼잖아...."

"뭐라고요? 지금 나보고 예쁘다고 했어요?"

"미안. 그런 단어를 쓰는..."

"아니 대체 어딜 봐서 예쁘다는거죠? 내가? 날 봐요. 마른데다 음침하고 난 인기 없는 타입이라고요."

스티브야말로 로키의 말에 멍해졌어. 자신이 봤을 때 로키는 꽤 예쁜 축에 속해있었어. 물론 키도 크고 여자같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검은 머리나 흰 피부, 녹색눈동자는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얇은 입술이나 투병으로 인해 더욱 가늘어진 선이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 로키가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거부할 수는 있어도 음침하고 인기없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 하지만 로키의 얼굴을 보니 진심인 것 같았어. 자신을 한참 비하아닌 비하를 하던 로키가 스티브를 가리키며 말했어.

"예쁘다는 건....그래! 당신같은 사람이죠!"

스티브는 어이가 없었지. 그러나 아랑곳 하지 않고 로키가 말을 이어가.

"금발에 푸른 눈! 이게 아름다운거에요!"

대체 이 비틀린 미의식은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모르겠어.

"아니! 니가 더 이쁘지!"

결국 로키와 스티는 니가 더 이쁘다며 싸우기 시작했어.

"...하아, 대체 우리가 무슨말을 하고 있는거야?"

"몰라요. 이게 다 스티브때문이에요."

결국 둘은 큰소리로 웃었어. 둘은 자신들이 다투던 어이없는 주제에 탈진할 정도로 웃었어. 그러면서 분위기가 풀렸지. 로키는 얼마만에 웃어본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고 스티브는 로키와 병원에 있었던 시절을 떠올렸어. 그리고 아까의 오묘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스티브가 침대에 누워 말했어.

", 빨리 자야지. 내일은 신입생 환영회가 있을 테니까!"

그러자 로키가 말했어.

"전 오른쪽에 안 누우면 잠이 안와요."

스티브는 순순히 자리를 양보해주었어.

 

대학생활의 첫날이 밝았어. 로키는 아직도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했어. 스티브는 잠이 든 로키를 쳐다봐. 그리고 어젯밤일을 떠올렸어.

한밤중이 되자 스티브는 귓가에서 자꾸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눈을 뜨게 됐어. 그 소리는 로키의 신음소리였어. 로키는 무언가 악몽이라도 꾸는 듯 땀을 흘리고 있었지. 그 기다란 몸을 잔뜩 움추리고는 작은 소리로 끙끙거렸어.

"어머니. 용서해주세요."

스티브는 깜짝 놀라서 로키의 몸을 흔들며 깨우기 시작했어.

"로키? 로키? 어디 아픈거야? 일어나봐. 로키?"

그러자 로키가 살짝 눈을 뜨더니 스티브를 향해 말했어.

"토르."

로키는 스티브의 손을 꼭 잡고는 놓치 않았어. 로키가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흘렀어. 그리고 로키가 웃었어. 로키는 다시 잠이 들었어. 스티브는 자신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른 로키를 보며 기분이 이상해졌어. 토르, 그 이름은 자신도 알고 있었어. 토르 오딘손. 그 이름은 맨하튼의 상류계층이라면 다 알고 있을 이름이었어. 아스가르드 그룹의 첫째였으며 미식축구를 잘 하는 걸로 유명했고 바로 로키의 배다른 형제였어. 그리고 자신과 같은 금발의 푸른 눈이었지.

 

거기까지 생각한 스티브는 화가 났어. 대체 이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는거지? 그리고 자신이 왜 이렇게 화가 나는거지? 그런 의문을 떠올리던 스티브는 이제 일어나려는 로키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어.

"Good Morning, freshman!"

 

대학의 수업은 생각보다 재미있었어. 자신이 원하던 법학은 아니었지만 인문학은 꽤나 자신의 적성에 맞았지. 사실 로키는 언어의 오묘함이 좋았거든 다만 성공하기 위해서 변호사를 꿈꿨던거야. 그리고 경제학을 부전공으로 신청했지. 로키는 아무래도 자신의 미래에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지. 그 수업에서 스티브를 만났어. 자꾸 만나는 인연이 신기하기도 했고 그닥 싫지는 않았어. 그런데 다만 로키가 듣기로는 스티브네 집은 대대로 정치인의 집안이었는데 왜 경제학을 듣는지 알 수 없었지. 그리고 스티브는 정치학과였거든. 여튼 로키를 발견한 스티브가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굉장히 열성적으로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 그런 스티브를 보면서 로키는 살짝 감탄했어. 생각보다 진지한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을 했지. 수업이 끝나고 스티브가 로키에게 다가와 말했어.

"오늘 신입생환영식이 있으니까 일찍 와."

신입생 환영식이라니. 그런 유치한 것 가고 싶지도 않았고 누군가와 관계를 가져야한다는 것이 싫었지만 그래도 로키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생각했어. 아마 오늘 만나는 사람들은 나중에 다 도움이 될거야. 라고 마음을 다잡았어. 신입생환영식은 사실 별 건 없었어.다만 상류계층이 여는 파티와 같았어. 대신 여자는 없었지. 이 파티는 정장을 요구하는 파티였어. 로키는 오딘의 카드로 구매한 정장을 입으면서 씁쓸하게 웃었어. 최고급양복은 로키의 몸에 맞춘 거라 움직임도 편했고 그 옷을 입은 로키는 멋지고 우아해보였어. 하지만 로키는 옛날에 입던 낡은 단벌 양복보다 더 불편한 느낌이었어. 안 좋은 기분을 애써 추스리며 파티장에 나갔어. 비록 여자는 없었지만 파티장은 분위기가 좋았어. 고급스러운 술과 안주들이 있었고 그리고 신입생들은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첫날을 보낸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떠있었지. 로키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어. 로키 라우페이. 아니 아스가르드 그룹의 숨겨진 아들. 사람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빛났지.

"가난뱅이 생활을 했다던데 생각보다 괜찮아보이는데?"

로키의 외양은 사람들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지. 하지만 그 곳에는 로키와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던 놈이 있었어. 그 놈은 로키를 싫어했었지. 가난한 주제에 언제나 당당했고 공부도 잘하는 놈이라니. 재수가 없었지. 그래도 지금까지는 로키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결국 자신의 밑에서 일할 놈이라는 생각에 그저 보기만 했었어. 그런데 어느새 로키가 그 대단한 오딘손의 숨겨진 아들에 자신도 겨우겨우 들어온 이 클럽에서 꽤나 주목받는 존재가 된거야. 그래서 놈은 로키가 싫었고 로키의 별명, 즉 손을 대면 불행할 거 같았기에 놈은 로키를 향해 비난과 모욕의 말을 던졌어.

", 겉모습은 그럴 듯 하지만 저놈의 근본은 저질이야."

로키도 그 말을 들었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고 샴페인잔을 들고 마시기 시작했어. 언제나 그렇듯 무시하기로 했지. 그러나 놈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어. 사람들의 주목이 자신에게로 쏠린다는 것에 도취된 놈은 계속 나불거렸어.

"저놈 별명이 뭔지 알아? 바로 마녀였어. 뒤에서 돈 받고 남자주제에 몸을 팔았다던군? 게다가 저놈은 바로 형이란 토르랑 붙어..."

거기까지였어. 나불거리던 놈은 주먹에 나자빠졌어. 그 주먹을 날린 건 로키가 아닌 스티브였어. 로키는 화낼 타이밍을 놓쳐버렸어.스티브는 무섭도록 화를 냈어.

"그 더러운 소리는 밖에 나가서 하지. 애송이야. 이 성스러운 곳에서 형제들을 상대로 험담하는 놈을 회원으로 받을 수 없어!"

단호한 스티브의 모습에 사람들이 놀랐어. 그렇게 파티는 끝이 났어. 로키를 험담하던 놈은 선배들의 의해서 정말로 쫓겨났지. 로키는 여전히 화를 내고 있는 스티브에게 다가갔어.

"스티브."

", 로키! 혹시 괜히 내가 나선 건 아니지? 저놈이 루머를 퍼트리길래.."

로키는 조용히 스티브를 바라보다 말했어.

"고마워요."

진심으로 우러나온 말이었어. 로키의 감사인사를 들은 스티브는 마이 플레저. 라고 수줍게 미소를 지었어.

 

그렇게 신입생 환영파티가 끝나고 로키는 스티브에 방에서 잠을 자려고 누웠지. 근데 스티브가 열두시가 넘도록 오지 않았어. 대체 왜? 로키는 살짝 걱정이 되었어. 혹시 그놈이 무슨 해꼬지라도 했을까봐. 물론 스티브가 그런놈들에게 당할 사람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였어. 휴대전화 번호라도 알아둘껄...로키가 살짝 후회를 했어. 새벽 두시가 되고 로키가 아무래도 찾으러 나가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옷을 챙겨 입은 순간 2학년 선배들이 로키의 방에 처들어왔어.

"헤이! 프레쉬맨!"

호기롭게 문을 박차고 온 선배들은 조금 당황을 했지.

"..? 아직 안잤냐?"

... 로키는 그제서야 알아차렸어. 전통적인 클럽의 신입생 환영회는 지금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뻘쭘해하는 선배들을 앞세우고 홀에 나갔어. 눈앞에는 비몽사몽으로 속옷바람으로 홀에 집합한 신입생들이 보였어.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은 건 로키 하나뿐이었지.스티브는 그 앞에서 약간 곤란한 웃음을 지으면 서 있었어. 로키의 뒤에 있던 선배 하나가 스티브에게 장난스럽게 외쳤어.

"회장, 후배사랑이 너무 지극한거 아니야? 로키는 너무 멀쩡하잖아. 미리 알려주면 어떻게해?"

"? 무슨소리야? 난 그런 적 없어."

스티브가 살짝 인상을 썼어. 물론 모두에게 공정한 스티브가 그럴리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스티브가 원래 이 '전통적'  '환영회' 를 별로 싫어했기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한 거였어. 스티브가 오해를 받는 다는 것을 알은 로키가 한발짝 나서서 말했어.

"...스티브 선배가 밤 늦도록 안나오시길래...걱정이 되서..."

스티브는 자신을 걱정했다는 로키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모든 신입생들에게 말했어.

"자 여기 다 모였으니. 이제 진짜 우리의 전통적인 환영회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다들 밖에 나가서 각자의 <파트너>를 데리고 오도록.제한시간은 30분이고 다시 이 자리에 모이는거야! 가장 늦는 사람, 파트너를 데리고 오지 못한 신입생에게는 무시무시한 벌칙이 있을테니 그렇게 알도록. 자 그럼 시작!"

모두들 정신없이 나가기 시작했어. 속옷바람으로 뛰어나가는 신입생들을 보고 선배들이 웃었지. 로키는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뒤에서 스티브가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빨리 가는게 좋을껄? 이라고 충고를 해줘서 거리를 나갔어. 거리에 나가니 새벽이라 사람은 없었고 그나마도 이미 다른 아이들이 다 데리고 갔기 때문에 여자는 더욱 없었어. 로키는 주위를 둘러보다 한 빨간머리 여성과 만나게 되었어. 그 여성은 아름다웠는데 왜 아직도 다른 신입생들이 채가지 못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어. 로키는 정중하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좋아"

"?"

로키는 당황스러웠어. 그런 당황스러워하는 로키를 향해 여성이 웃으면서 말했어.

"난 나타샤라고 해. 나를 모르는 걸 보니 신입생, 그것도 친구도 없는 애구나?"

대체 이 여성, 아니 나타샤는 어떤 존재길래 저러는지 로키는 눈을 꿈벅였어.

"같이 가줄게. 넌 나한테 빚진거야."

로키는 나타샤가 내민 손을 잡고 클럽하우스로 돌아갔어.

 

로키가 나타샤를 데리고 클럽하우스에 들어오자 다들 놀라는 눈치였어. 신입생들은 술렁거렸고 선배들은 흥미로워 했으며 스티브는 눈살을 찌푸렸지. 로키는 조금 당황했어. 자신이 데리고 온 그녀는 미인이었지만 이런 굉장한 반응이라니 게다가 그 사람 좋아보이는 스티브가 싫어하는 내색을 하다니.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 나타샤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로키의 팔짱을 끼고 유유히 클럽하우스 중앙으로 걸어갔어.

 

로키는 몰랐겠지만 사실 그녀는 대학 내에서 굉장히 유명한 여인이었어. 그녀의 별명은 블랙위도우였지. 별명 그대로 그녀는 애인들을 수시로 갈아치우기로 유명했고 그 애인들은 하나같이 잘나가는 남자들이었어. 운동선수, 재력가, 천재예술가, 유명연예인 등등.하지만 그녀에게 버림 받은 뒤면 하나같이 슬럼프를 겪었어. 그것이 그녀의 별명의 이유였어.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하여 경고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과 재능 영민함에 이끌리는 남자는 수도 없었지. 물론 그녀는 자신의 기준에 미달되는 남자는 만나지 않았어. 그 취향은 널을 뛰었지만 분야의 최고들만 사귄다는 건 확실했어. 그녀는 여성사교클럽의 회장이었어. 뭇 여성들의 질투를 받았지만 그녀는 선망의 대상이었어. 다만 이런 그녀에게도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 스스로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안녕. 자기. "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떠니. 동생아?"

나타샤로마노프. 그녀는 스티브의 이복동생이었어.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나타샤의 어머니와 스티브의 아버지의 재혼은 꽤나 유명했지.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인 로저스네와 러시아 군수산업의 핵심이던 로마노프네의 결합은 굉장했지. 겉으로는 국경을 넘어선 사랑으로 포장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다 알고 있었지. 이것은 비지니스적인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결코 흠이 될 수 없었어. 주위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결혼이라는 고전적인 방법을 통해 거래를 하고 있었거든. 다만 그녀에게 단점이 되었던 것은 하나였어. 하나의 소문.

나타샤로마노프는 이복형제인 스티브로저스를 사랑한다.

 

그것은 치명적이었지. 하지만 이 폭탄같은 소문은 그저 하나의 루머로 떠돌 뿐이었는데 그 이유는 스티브의 격렬한 부정때문이었어.그는 그녀를 여동생으로써 너무 사랑했어. 게다가 스티브는 꽤나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라 온 남매에게 왜 자꾸 이런 저질적인 소문이 떠도는 지 몰랐어. 다만 스티브가 몰랐던 것은 그 소문이 모두 나타샤의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었어. 그녀는 언제나 남자들을 찰 때 이런말을 했거든.

"스티브가 더 나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스티브는 어린 여동생이 자신을 너무 추켜세워주는 것이며 자신을 스토커 퇴치용으로 쓰는 거라며 웃었어. 다만 성인이 되고 난 뒤 점점 무절제해지는 여동생의 행동이 걱정되었지만 더 이상 간섭하지는 않았지. 스티브는 사람들의 눈이 신경이 쓰였는지 장난이라도 남매이상의 행동을 하면 스티브는 로마노프에게 무척이나 화를 냈어. 그녀도 그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이 주목받는 남매의 이야기는 대학 내에서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어. 그렇기에 대학 안의-스티브의 영향력이 미치며 그녀의 소문을 아는-남자들은 그녀가 먼저 접근하지 않는 이상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어. 그런데 그런 나타샤가 신입생의 손을 잡고 나타난거였으니 얼마나 놀라웠겠어. 게다가 로키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오딘가문의 둘째였어. 아마 다음날이면 소문이 파다하게 날 것임이 분명했어. 그런 사실을 모르는 로키는 그저 스티브의 표정이 왜 굳어있는지 궁금했고 그런 사실을 아는 나머지들은 왜 그녀가 로키를 선택했는지 궁금해했고 스티브와 나타샤의 사이는 묘했어. 스티브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그런 스티브를 보는 나타샤의 얼굴에는 빙글거리는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어.

"이제, 제한시간이 지나지 않았어? 오빠?"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선배들을 따라가도록. 그리고 파트너와 함께 온 신입생들은 나를 따라오고."

여전히 스티브는 탐탁치 않은 얼굴이었어. 역시 새벽에 급하게 나간 탓인지 파트너를 구해 온 신입생들은 많지 않았어. 로키는 멍하니 서 있다가 나타샤가 이끄는 대로 스티브를 따라갔어.

 

스티브를 따라간 신입생들은 옷을 다시 갖춰입고 오라는 소리에 다시 옷을 갖춰입고 내려오기로 했어. 로키는 옷을 갖춰 입으러 가는 길에 슬쩍 나타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 흥미로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어. 뭔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차오르는 동질감도 느껴졌어. 스티브의 표정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어. 피가 섞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여동생을 굉장히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토르가 생각났지. 어쩌면 자신들이 좀 더 일찍, 다른 상황에서 만났다면 스티브가 나타샤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타샤가 스티브를 사랑하는 것 처럼, 우리도 서로 좋은 형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미 끝난 이야기였어. 로키는 만약에, 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성격은 아니었어. 이제 토르의 생각은 그만하기로 마음먹었어.

로키가 홀에 내려가자 스티브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던 나타샤가 표정을 바꾸고 웃으면서 걸어왔어.

"헤이, 스위티. 이제 쇼를 감상하자."

그녀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신입생들이 벌거벗은 채 나비넥타이와 지팡이, 그리고 구두만을 신고 걸어나오고 있었어. 그들은 모자로 중심부위를 간신히 가리고 어정쩡하게 걸어나왔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모두 웃음이 터졌지만 오직 세 사람만은 웃지 않았지. 스티브는 로키와 나타샤를 보고 있었고 나타샤는 그런 로키를 로키는 자신을 쏘아보는 그 눈길에 옴짝달싹 못했어.

 

진정한 파티가 다시 시작되었어. 저녁때 열렸던 파티는 그저 눈가림용에 지나지 않았어. 진짜 대학생들의 정신나간 파티가 시작이 되었어. 신입생들의 나체쇼 가 끝이 나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어. 독한 술과 가벼운 엑스터시가 오갔고 디제이가 최신 음악을 집이 떠나가라 크게 틀어댔어. 이런 분위기에 도취된 남녀들은 서로 손을 잡고 으슥한 곳으로 기어들어갔지. 그런 꼴을 지켜보던 스티브는 몇몇 심각하게 보이는 상황을 정리하고 난 뒤 로키와 나타샤를 찾기 시작했어. 스티브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 자신의 여동생과 로키가 어떤 관계라도 맺는다면...이라고 생각하자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어. 그리고 아까 로키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에 나타샤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어.

 

"..나타샤 니가 신입생의 파트너가 될 줄이야 몰랐네."

"취향이야."

"취향? 너는 애송이들은 안 사귀잖아."

나타샤가 깔깔거리며 웃었어.

"애송이? 그래 맞어. 나는 성숙한 놈들만 사귀지. 하지만 다들 오빠보다는 못하더라고."

나타샤가 요염하게 스티브의 목 뒤로 손을 둘렀어. 스티브가 정색하면서 그 손을 풀렀어. 그리고 나타샤에게 단호하게 말했어.

"괜히 신입생 마음에 상처주지마."

"언제부터 이렇게 상냥하셨나. 미스터 스티브로저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

"니가 요새 신경쓰이는 사람이 저 밤비지?"

스티브는 반박하려고 했으나 사실 로키를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었기에 입을 다물었어. 그건 동정?연민? 단순한 호감? 자신안에서 로키에 대한 감정의 정의를 내려야 하는가 싶었어. 처음에는 안쓰러웠고 호기심이었고 후에는 자꾸 보고 싶어졌고 챙겨주고 싶었어. 사실 로키가 사라졌을 때는 내색은 안했지만 로키를 미친듯이 찾아다녔어. 심지어 병원에다 로키의 행방을 물어보기 위해서 아버지의 이름까지 팔았을 정도였어. 스티브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던 것이 가문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이었는데도 말이야. 로키가 오딘가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알아냈어. 다만 로키오딘이 아니라 로키라우페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 되지 않았지만 원래 상류계층의 가정사는 다 복잡하게 마련이니까. 도리어 지금껏 단란한 가정을 꾸린 토르네 가족이 이상한 것이었지. 아무튼 로키가 오딘가문의 사생아였으며 자신과 같은 대학에 입학예정이라는 사실에 기뻤어. 게다가 친구이자 클럽 부회장인 바튼이 가지고 온 클럽의 선발명단에 로키가 들어있자 이건 운명이라고까지 느꼈지. 그런 생각까지 가졌었기에 로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제서야 되짚는 것이 좀 웃기기도 했어. 하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서의 로키에 대한 감정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 남자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스티브의 관념안에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 로저스를 나타샤는 노려보고 있었어.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어. 그녀는 그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스티브 자신보다 더 그를 잘 알았어. 그의 감정이 손에 잡힐 듯 보였지.

그녀도 기억을 떠올렸어. 병문안을 갔을 때 로키와 함께 있던 스티브의 모습이나 산책 중에 만났던 새로운 '친구' 에 대하여 신나게 말을 하던 모습,  '친구' 가 없어졌을 때 화를 내며 아버지의 이름을 들이밀고 의사를 협박하던 모습들. 그런 것들을 나타샤는 모두 보고 있었어. 그녀는 스티브가 로키에 대하여 사랑, 그 비슷한 감정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어. 다만 이 고지식한 자신의 오빠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에 꽤나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걸 알았지. 그 전에 어떻게든 막아야해! 라고 나타샤는 생각했어. 멍하니 자신과 로키의 관계를 되짚어보던 스티브와 그런 스티브를 한참 노려보고 있던 나타샤는 로키가 나타나자 대화를 중단했어. 스티브가 로키를 부르기도 전에 나타샤가 화려한 웃음을 지으며 로키를 채갔지. 스티브는 그 둘을 계속 바라보았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어떤 감정에 의심을 품고.

 

자신의 사랑하는 여동생이지만 그녀가 로키와 함께 있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났어. 그래, 자신의 감정은 질투였어. 나타샤를 향한 질투였어. 그것을 깨달은 스티브는 로키와 나타샤를 찾으러 돌아다녔어.그러나 로키와 나타샤는 쉽사리 눈에 띠지 않았어. 수 많은 커플들이 숨어있을만한 으슥한 곳이나 개인 방들을 열어제꼈지만연인들의 즐거운 시간만 방해하는 셈이었지. 스티브는 점점 더 속이 탔어. 괜히 연인들에게 적당히 하라는 화풀이나 했지. 그렇게 파티가 절정에서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향락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 까지도 여전히 나타샤와 로키를 발견하지 못한 스티브는 허탈한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에 들어왔어.

"늦었네요. 스티브."

자신을 반겨주는 건 편안한 옷차림으로 책을 읽고 있던 로키였어.

 

스티브는 멍하니 로키를 바라보았어. 그런 스티브를 로키는 의아한 듯 쳐다봤지. 이상하게도 거의 처음 보는 듯한 절박한 표정으로 스티브가 로키에게 물었어.

"나타샤는? 로키 너랑 나간 것 아니었어?"

"나타샤랑은 밖에 나가서 밥 좀 먹고 헤어졌어요."

나타샤와 아무일도 없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스티브는 기분이 좋아졌어. 스티브가 전처럼 웃어보이자 로키는 들고있던 책을 덮고는 "잘 자요. 룸메이트." 라며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갔어. 스티브는 침대에 앉아 로키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어. 오늘 파티는 재미있었는지 마음에 들었던 여자가 있었는지 등등 로키는 벌써 잠이 들었는 지 미동도 없었지만 그냥 로키를 향해 말을 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어.

"혹시 나타샤가 무슨 말 하지 않았어?"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어. 스티브는 조용히 말했어.

"...날 기다리고 있었던거라고 생각해도 될까? 로키?"

여전히 말이 없는 로키를 두고 스티브는 파티의 마지막 정리를 위해 방을 나섰어. 그리고 로키는 스티브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도 그가 잠이 든 후에도 잠들지 못했어.

 

로키는 잠들지 못했어. 나타샤와 아까 했던 대화들이 기억이 났어.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자신과 닮아있었어. 나타샤는 로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지.

"나는 스티브를 사랑해."

그녀의 당당한 고백에 할 말이 없어졌어. 그 당당함에 로키로써 드물게도 그녀에게 질문을 했어.

"그는 너의 오빠잖아?"

"so, what?"


그녀는 7년 전 그날 이후로 스티브를 단 하루도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말했어. 그녀는 어차피 피도 안 섞였는데 뭘. 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어. 하지만 로키는 알 수 있었어. 그녀는 지금 끔찍하고 지독한 짝사랑중이라는 것을 말이야. 나타샤는 자신과 같았으니까. 그녀는 스티브의 밝은 면과 다정했던 면에 끌렸어. 그녀에게 있어서 스티브는 생에 최초의 빛이였어.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그녀의 유년시절도 로키만큼 순탄하지 못하다는 것을 눈치챘지. 그녀는 스티브는 자신을 여동생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는 둥 짜증을 냈고 사실 자신이 스티브를 좋아한다는 소문도 더 이상 퍼지면 안된다고 말했어. 그것은 정말 사상 최대의 스캔들이니까. 마치 친한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듯 말하는 나타샤를 향해 로키가 살짝 비웃음을 던지며 말했어.

",. 나타샤로마노프. 이런 비밀을 나한테 말해도 괜찮겠어?"

"너한테는 말해야할 것 같으니까. 나한테 빚을 졌다고 말했지? 그게 이거야. 날 도와줘."

로키는 나타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 대체 뭘 도와달라는거지? 하지만 나타샤는

"아직은 그것 뿐이야. 내가 스티브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둬." 라며 계산서를 들고 나갔어. 그녀는 끝까지 빚을 지게 만드는 여자였어.

그리고 로키는 방에 들어가 스티브를 기다리며 생각을 했어. 그녀와 스티브, 그리고 자신과 토르. 자꾸 그들의 관계에 자신을 끼어넣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생각이 났어. 첫 만남부터 스티브는 토르를 생각나게 하더니 웃기는 일이었어. 게다가 이 늦은 시간까지 자신이 스티브를 기다리는 것도 웃겼어. 방 밖에서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어. 로키는 황급히 책을 하나 꺼내서 아무렇지 않게 위장했어.

"늦었네요. 스티브."

스티브가 방에 들어오고 자신에게 나타샤와의 일을 묻는데 어쩌면 스티브가 나타샤의 짝사랑이 꽤 희망적이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어. 왜냐하면 나타샤와 자신이 단둘이 있을 때 바라보는 시선이나 나타샤와 아무일도 없었다고 말하니 안심하는 꼴이라니 그런 스티브를 보며 로키는 살짝 심통이 났어. 왜인지는 몰랐지만 스티브가 다정하게 묻는 것이 짜증이 났어. 그래서 로키는 자는 척을 했지.근데 나가기 전에 스티브가 자신을 기다렸다고 생각해도 될까라고 묻는 말에 로키는 어안이 벙벙해져. 왜 저렇게 안타깝고 간절하게 자신을 향해 말하는건지. 마치 구애를 거절할까봐 두려워하는 목소리에 로키는 잠이 달아났어. 나타샤의 당당한 사랑고백에 동화되어 자신의 안에 있던 감정이 좀 더 솔직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던거야. 그 감정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르가 로키의 학교를 방문했어.

 


03

 

토르가 로키를 찾아 온 것은 입학식이 끝난 뒤 3주가 넘은 시점이었어. 토르도 신입생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대학생활에 휩쓸려서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어. 여자와 술, 마약. 그 모든 것이 있는 파티의 연속이었어. 고등학교 때도 줄곧 즐겨온 것들이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장소 더욱 기발한 방법들 속에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어. 로키의 자리를 뺏았고 들어간 법대는 수업도 사람들도 재미가 없었어. 그래서 수업을 듣는 시간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됐어. 고교시절보다 더욱 문란해진 생활에 일간지*6면에 종종 실리기도 했어. 아스가르드 그룹의 후계자의 일탈! 이런 식의 신문기사가 실렸지만 무시했지. 아직까지 크게 일을 벌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점점 방탕해지는 대학생활 속에서도 토르는 종종 로키를 떠올려. 자신의 이복형제, 한때 자신의 친구. 어떻게 보면 이상하지만 어떻게보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데 로키를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렸어. 그리고 불현듯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로키를 찾아갔어.

 

토르는 로키가 있을 기숙사에 들렸다가 그의 짐은 클럽하우스에 있을거에요. 란 대답을 들었어. 토르 자신도 클럽하우스의 회원이지만 로키가 '클럽하우스'에 있다는 건 좀처럼 상상이 잘 안갔어. 언제나 사람들을 피하고 무시하고 비웃던 로키가 사교클럽에? 무언가 좋은징조인가? 란 생각도 들었어. 로키가 있다던 클럽하우스에 들어갔어. 토르와 다니는 학교의 클럽하우스와 비슷했지.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상류층 냄새가 팍팍나는.하우스였어.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클럽 하우스에 있던 사람들이 토르를 알아봤어. 요즘 계속 가십지에 실리는 인물이었는데다가 사교계에서 많이 본 인물이니까. 토르는 로키가 어딨냐고 물어보는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로키는 스티브와 함께 있을 거라고 말을 해. 토르는 미간을 찌푸렸어. 스티브?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었지만 지금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 누군가가 둘이 도서관에 갔다고 말을 해줘. 토르는 도서관으로 뛰어갔어. 무언가 마음속에 작게 일렁이는 불안감을 가지고. 로키를 빨리 만나야만 이 불안감이 사라질 것 같았어.

 

토르가 도서관 앞에서 로키를 발견했어.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건강해보이는 로키와 그 옆의 금발의 남자가 보였어. 저 남자가 분명히 스티브겠군, 토르는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어. 그때 스티브와 이야기를 하던 로키가 환하게 웃었어. 토르는 깜짝 놀랐어. 정말이지 로키의 웃는 모습을 너무 오랜만에 봤어. 토르와 놀던 그때 모습같아. 어쩌면 로키와 자신이 예전처럼 친구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토르는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띄우며 로키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어. 그러나 토르의 눈앞에 보인 건 막연하게 기대하던 로키가 반겨주는 모습이 아니라 토르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로키의 얼굴이었어. 토르는 로키와 자신의 관계는 여전히 최악이었으며 자신에게만 보여주던 그 미소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어. 그리고 자신의 불안감의 정체를 깨달았어. 로키와 함께 있다는 스티브라는 남자 때문이었어.

 

토르는 충격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스티브는 로키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 로키와 스티브의 관계는 조금씩 물꼬를 트고 있었지. 이전 고등학교시절 토르와의 관계만큼은 아니더라도 로키가 조금씩 스티브에게 의지하고 있었어.스티브는 자신이 로키에게 품는 감정이 특별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어. 로키도 스티브가 자신에게 품는 감정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다만 둘은 천천히 그 감정이 좀 더 명확한 실체가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왜냐하면 스티브는 엄격한 청교도적 가정에서 자라와서 호모섹슈얼에 관하여 편견을 가지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쪽이었고 로키는 자기애가 밑바닥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 스티브의 감정이 좋은 건지 나쁜건지도 몰랐고 게다가 토르와의 일이 있었지. 잠깐 마음을 열었더니 이내 상처나버린 기억때문에 조심하고 있었어. 그 때문에 로키는 어렸던 그때보다 좀더 영악해졌고 자신을 숨길 줄 알게되었지. 그래서 스티브는 로키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어. 스티브와 만난 이래로 이처럼 감정을 드러낸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 게다가 예전에 로키가 잠결에 자신을 토르라고 착각했었던 것도 있고 스티브는 로키에게 다가온 토르를 막아섰어.

 

"무슨일이시죠?토르씨?"

토르가 오만한 눈으로 말했어.

"넌 누군데 내 앞을 막아서는거지?"

토르는 스티브를 모른 척 했어. 너 따위 모른다는 행동에 스티브는 한편으로 어린애답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로키의 앞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에 열이 받았어. 사실 토르와 스티브는 서로 얼굴도 알고 인사도 몇번 나누어 본 사이였어. 친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무시할만할 사이도 아니었지. 로저스 집안과 오딘 집안은 서로 미묘한 관계에 있었어. 오딘가문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을 은근히 지지하고 있었고 로저스 집안은 공화당을 대표하는 정치가 중 하나였어. 아직 두집안끼리 부딪힌적은 없었지만 미묘한 대립관계였지. 그런 일은 제쳐두고 토르는 로키의 옆에 당연하게 있는 스티브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래서 무시를 한거였어.스티브가 좀 더 토르의 앞을 막아서며 말을 했어.

 

"저희는 볼일이 있는데 용건만 간단하게 해주시겠습니까?"

"형제를 보러 왔는데 용건이 필요한건가?"

 

토르가 으르렁거리면서 로키의 손목을 잡았어. 스티브도 지지 않고 로키의 반대편 손목을 잡았지. 둘다 만만찮게 힘을 줘가며 로키의 손목을 잡는 통에 손목이 다 저릿저릿했지. 로키는 화를내며 손을 뿌리쳤어.

 

"Enough! 둘 다 그만둬!"

 

로키의 팔목에 빨간 손자국이 나있었어. 스티브는 그 손자국을 보며 미안하다고 작게 사과했지만 토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눈만 번뜩이고 있었지. 그 모습에 로키는 한숨을 쉬며 스티브에게 말했어.

 

"죄송해요. 스티브 우리 약속은 조금 미뤄두기로 할까요? 제 형이 할말이 있는 듯 싶네요. 잠시 다녀올게요. 오래걸리지는 않을거에요."

 

그것보라는 듯 토르는 승리한 맹수마냥 뽐냈어. 스티브는 로키에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줘." 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어. 로키는 걱정말라며 슬쩍 웃어보였고 그런 둘의 모습을 보는 토르의 심기는 무척 불편했어.

 

-

 

 

"대체 무슨일이야."

 

토르는 할말이 없었지. 왜냐하면 자신이 눈을 떴을 때 로키가 보고 싶었고 그래서 보러 왔을 뿐이니까. 아까 스티브에게 날을 세우던 토르는 어디에 가고 널 보고 싶어서 왔다. 라고 솔직하게 얘기해볼까 고민하며 우물쭈물 로키의 눈치를 보는 토르만 남았어. 로키가 그런 토르를 보더니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말해.

 

"대체 형제라면 이런 쓸데없는 시간까지 보내야 하는거야? 아님 이제 여자를 끼고 노는 시간이 지겨워졌나?"

 

로키는 토르가 그 동안 가십지에 실린 걸 다 봤었어. 그걸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꼈지. 자신이 동경하던 사람이 망가지는 것을 보는 느낌이 있었어. 로키는 토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아니까 그저 단순하게 남들이 보는 돈 많고 잘생긴 금발의 쿼터백이아니라 가정환경이 워낙 대단해서 좀 눈치가 없고 배려가 없을 뿐이지 다정다감하고 남한테 상처를 주기 싫어하는 토르의 성격을 아니까 얘가 왜 이러나 싶기도 했고 왠지 그 모든 게 자신이 신들과도 같던 가정을 깨트려서인가 싶기도 해서 마음도 좀 상했지. 한편으로는 화도 났었어. 왜 자신이 토르를 걱정하고 있는 건지, 자신을 꿈을 짓밟고 모욕한데다 엄마의 복수에 걸림돌이 되는 토르인데 자꾸 호감이 가니까 이러면 안돼! 하면서 괴로워하는데 토르는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여자들이랑 놀러가서 이런 사진이나 찍혀오고.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 질투심도 느꼈었어. 그 전이라면 동경이 뒤섞인,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토르가 가지고 있다는 질투심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나타샤의 마음을 봐서인지 스티브의 은근한 보살핌 때문인지 자신이 토르가 '여자와 함께' 라는 것에 질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다만 그깟 질투심보다는 다른 감정들이 더 커서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할 수 있었어.

 

토르는 화를 내는 로키를 보며 아직 나와 얘 사이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구나, 란 생각을 해. 그리고 왜 돌아가지 못하는 지 이해를 할 수 없었어. 물론 로키로 인해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고통을 받고 있긴 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이제부터라도 잘 지냈으면 싶은데 로키는 자꾸 자신을 밀어내니 화가 나. 어떻게 보면 이복동생이라도 가족이니까 전보다 친밀해야 될 사이가 아닌지 싶은 거야.그래서 답답하고 왜 자꾸 자기를 밀어내는지도 모르겠고. 토르는 마이너스 감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로키를 이해 못해. 물론 로키나 로키의 엄마에 관해서 얽힌 일을 모르니까 더욱 그러는 거지만. 토르는 이제 로키를 바라볼 때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에서 친하게 지내고 싶은 동생이 되었어. 로키가 동생이란 걸 알기 전에는 무언가 자신 안에서 싹트고 있던 다른 감정이 있었지만 동생이란 걸 안 순간부터 그런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묻어버렸어.

 

로키와 첫 만남에서 그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거나 그를 따라다니며 친구가 되기로 손을 잡았을 때 두근거렸던 느낌, 겨우겨우 함께 하교를 했을 때 웃던 로키를 보며 자기가 더 기분이 좋아지던 일, 로키와 헤어질 때 느꼈던 아쉬움, 로키가 자신을 돈을 보고 좋아했다는 말에 충격을 먹고 다른 남자들에게 몸을 팔았다고 소리를 질렀을 때 느꼈던 배신감, 자신과는 결코 자지 않겠다던 말에 느꼈던 분노. 로키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 느꼈던 초조함, 다시 나타나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는데 꿈을 짓밟았다고 자신에게 소리 질렀을 때 느꼈던 절망감. 모든 감정을 통째로 덮어버렸어. 토르가 감정에 대해 둔해서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가족 이란 이름으로 로키와 자신이 더 가깝게 묶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능적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이야. 친구나 어쩌면, 자신이 바래왔을지 모르는 연인이란 관계는 토르에게 너무 불안정했었어.

 

 

로키는 토르에게 쏘아붙이고 나서야 질투심을 드러낸 것 같아서 좀 당황했어. 그러나 토르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어. 그가 눈치를 못 챈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빨리 자리를 뜨기로 해. 로키가 할말 없으면 이만 돌아갈게. 스티브가 기다려서.” 라고 돌아서는데 토르가 로키의 손목을 확 잡아끌었어. 토르는 지금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아. 로키가 자신에게 돌아서는 것도 화가 났고 스티브라는 놈의 이름을 말 하는 것도 화가 났어. 로키가 아프다며 인상을 썼지만 토르는 놓지 않았어.

 

스티브에게는! 그 놈에게는 그렇게 웃어줬으면서! 이제 가족인 자신에게는!

 

토르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어. 나는 로키의 형이야. 그를 만날 자격은 충분하고 그럴 의무도 있어. 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어. 토르는 아파하는 로키에게 말했어.

 

“2주 뒤에 시합이 있어. 우리학교랑 너희학교 친선경기야. 나 거기 출전할거야. 와줘. 와서 응원을 해줘.”

내가 왜?”

우리는!”

 

토르가 화를 내듯 크게 소리쳤어. 하지만 토르의 눈동자는 마구 흔들렸어. 로키는 처음으로 토르의 감정을 읽어내지 못했어. 언제나 직선적이고 솔직한 토르였기 때문에 로키는 당혹스러웠어. 토르가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부러질 것처럼 아팠던 손목은 이미 느껴지지도 않았어. 지금만큼은 남들의 시선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오딘도 어머니 로피의 저주도 심지어 자신을 모욕했고 상처 주었던 토르에 대한 감정도 상관없었어. 그저 토르를 안아주고 싶었어. 로키는 토르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었어.

 

우리는 형제잖아.”

 

그러나 그 손은 토르에게 닿지 못했어.

 

 

토르의 말에 로키가 황급하게 손을 거두었어. 형제, 그래, 우리는 형제였어.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어. 로키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놀랐어. 로키는 토르에게 벗어나기 위해 무조건 토르에게 시합을 보러가겠다고 약속했어. 토르는 그제야 손을 풀어주었어.로키는 토르에게서 도망치듯 사라졌어. 그런 로키의 뒷모습을 보는 토르는 다시 화가 나고 서글퍼졌지만 그래도 2주 뒤에 있을 시합에 로키가 오겠다고 해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어. 우리는 가족이니까. 시간은 많아. 토르는 그렇게 조금씩 사이를 좁혀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어.토르의 손에서 벗어난 로키는 미친 듯이 뛰어갔어. 토르가 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울 것 같았어. 로키는 토르가 자신의 첫사랑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 토르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행복을 준 빛과 같은 존재였었어. 그러나 둘은 형제였어. 무엇보다 로키를 슬프게 만들었던 것은 토르가 자신을 그저 친구, 형제로 볼 뿐이라는 사실이었어. 자신과 같은 감정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어. 만약 로키가 자신에게 좀 더 당당했거나 토르와 형제가 아니었다면 토르가 로키에게 드러냈던 감정이 그저 가족애나 우정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어. 로키는 스티브와 약속도 잊고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어. 욕실에 들어가 물을 최대한 틀어놓은 뒤 펑펑 울었어. 자신의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크게 울었어.

 

로키?”

 

스티브의 목소리가 들렸어. 로키가 놀라 뒤를 돌아보니 스티브는 언제나 단정하던 머리는 흐트러져있고 땀을 무척 흘린 듯 보였어.시간이 꽤나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로키가 약속장소에 오지도 않고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자 스티브는 걱정이 돼서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결국 로키의 방에까지 왔던 거였어. 스티브는 로키를 찾으면서 별별 생각을 다했어. 로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가장 최악의 상상은 토르가 로키를 데리고 자신의 눈앞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이었어. 더욱 최악이었던 건 너무 자연스럽게 로키가 토르의 품안에 있는 상상을 하는 것이었어. 분노가 일었어.

 

Idiot! 그때 그렇게 보내서는 안됐는데!

 

그리고 인정해야만 했어. 자신은 로키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동성애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로키와 키스를 하고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고 싶었어. 스티브는 로키를 발견하면 무조건 자신의 품안에 안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어. 그리고 욕실에서 울고 있던 로키를 발견한 순간 스티브는 자신의 다짐대로 했어.

 

스티브는 울고 있던 로키를 끌어안았어. 로키는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부끄러웠어. 황급히 스티브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스티브는 로키를 놓아주지 않았어. 발버둥치는 로키를 더욱 꼭 끌어안은 뒤 로키의 얼굴을 들고 축축하게 젖은 뺨에 키스를 했어. 깜짝 놀란 로키가 더욱 버둥거렸어.

 

스티브 로저스! 대체 이 무슨!”

울지마. 로키. 내가 위로해줄게.”

 

스티브는 로키의 발버둥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로키의 뺨과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어.

 

이러지마요!”

아니면 나를……. 토르라고 생각해도 좋아.”

 

로키는 스티브의 말에 모든 행동을 멈추었어. “눈 감아.”스티브는 로키의 눈을 손으로 가렸어. 그리고 말했어.

 

나를 토르라고 생각해.”

 

스티브가 로키에게 키스했어. 처음에는 버드키스로 시작했지만 굳게 닫힌 로키의 입술을 살짝 물었어. 그제야 로키가 입을 살짝 벌렸고 스티브는 어설프게 벌려진 입안을 격렬하게 탐했어. 손바닥 아래로 로키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어. 스티브는 마음이 간질거렸어. 키스가 좀 더 격렬해지자 굳어있는 로키의 손을 자신의 목 뒤로 두르게 했어. 스티브는 로키가 경험이 적다는 것, 어쩌면 자신과의 키스가 첫키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리고 속으로 토르에게 비웃음을 날렸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내버려두다니 바보 같군. 그리고 자신에게도 비웃음을 날렸어. 로키와 지금 키스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럼 누구지? 스티브로저스인가 아님 토르 오딘인가. 입이 썼어. 그래도 여전히 로키의 입술은 달콤했어.

 

격렬한 키스가 끝나고 로키의 얼굴에서 손을 떼자 로키의 긴 속눈썹이 몇 번 움찔거리더니 이내 물기어린 녹색 눈동자가 드러났어.스티브는 로키가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로키의 눈동자에서는 여러 감정이 읽혀졌어. 쾌감과 당혹스러움, 후회, 죄책감 그리고 애정. 그 감정들이 뒤섞여서 눈물이 되어서 흘렀어. 스티브는 그 눈물을 혀로 핥아주었어.

 

울지 말라고 위로해 준건데. 이러면 소용이 없잖아.”

미안해요.”

미안할 필요가 뭐가 있어. 내가 그러라고 한 건데.”

 

스티브는 로키의 말의 뜻을 알았어. 그런 로키를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그것으로 로키가 자신에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어. 토르와 닮은 이 외모도 마음껏 이용해주리라고 생각했어. 스티브는 로키의 얼굴을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어.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단계는 부디 스티브 로저스가 했으면 하니까.”

 

스티브는 로키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 방을 나갔어. 여전히 로키에 대한 욕망은 넘쳐흘렀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어. 오늘은 단순한 위로였어, 그리고 자신은 토르였지만 내일, 그리고 기필코 언젠가 스티브 로저스로 로키와 연인이 되고 싶었어. 그랬기에 오늘은 물러가기로 했어.

 

스티브가 나간 뒤 로키는 스티브와 입을 맞추었던 자신의 입술을 만졌어. 스티브가 생각했던 대로 로키에게 있어 그건 첫키스였어.로키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어. 일단 스티브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어. 스티브가 말한대로 자신이 토르를 사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어. 어떻게 그 마음을 스티브에게 들켰는지 모르겠지만 미안했어. 스티브가 자신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심지어 자신을 토르라고 생각하라고까지 했어. 그런 스티브의 마음이 고마웠어. 하지만 무엇보다 로키는 혼란스러웠어. 토르를 좋아하는 것을 들킨 것도 스티브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혼란스러웠지만 무엇보다 로키가 눈을 떴을 때 보았던 금발과 푸른 눈에서 자신이 떠올린 사람이 토르였는지 스티브였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

 


그 다음날 스티브는 로키를 전과 다름없이 대했어. 로키도 자신을 배려해주려는 스티브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어.평소처럼 좋은 선후배 사이로 농담도 자주하고 자주 어울려다녔지만 그뿐이었어. 그 키스 이후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 키스로 인하여 둘만 남아있게 되면 묘한 성적 긴장감이 둘 사이에 존재했어. 스티브는 로키의 입술에 맞닿은 뒤 더욱 로키와 더한 것을 하고 싶었고 로키는 자신의 감정이 혼란스러웠지만 그와는 별개로 스티브를 좋아하는 감정을 확신했어. 하지만 더 이상 관계는 진척되지 않았어. 둘 사이에 암묵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은 그 이유를 알았어. 모두 '토르' 때문이었어. 그리고 스티브는 결심했어. 이 관계를 어떻게든 정리해야겠다고. 토르가 로키에게 말했던 예일과 하버드의 시합 전날. 스티브가 로키에게 말했어. "로키.이번에 열리는 시합에서 토르말고 나를 응원해줘."

 

스티브는 타고난 신체적 재능 덕에 여러 스포츠 클럽에서 눈독 들이는 인재였어. 사실 스티브도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 때때로 시합이 있을 때마다 부탁을 받으면 대타를 뛰어주고는 했어. 다만 이번에 입은 다리부상 때문에 앞으로 1년 동안 시합에 나갈 일은 없다고 미리 선언했었어. 하지만 이번 미식축구 시합에서 토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티브가 직접 나가기로 마음먹고 시합에 나가기로 했어. 스티브는 자신답지 않은 무식한 방법을 쓴다고 생각했어. 중세시대의 기사가 사랑하는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서 결투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런 방식을 로키가 좋아하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었어. 자신을 여자 취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로키였으니까. 그래도 스티브는 이런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어. 토르같은 남자에게서 로키를 뺏기 위해서는 그의 안마당에서 당당히 승리해야했어. 로키를 바라보던 토르의 눈빛을 자기는 알 수 있었어. 그것은 형제애 따위가 아니었어. 소유욕이었어. 지금은 그것이 형제란 이름으로 포장이 되있었지만 언제고 그런 얄팍한 포장따위는 쉽게 부서질 것이었어. 로키와 토르가 서로의 감정을 아직 모르고 있는 걸 스티브는 알고 있었어. 빠르면 빠를 수록 좋았어. 일치감치 도장을 찍어야했어. 로키는 자신의 것이라고. 짐승같았던 토르에게 로키를 뺏아오는데 이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었어.로키는 스티브의 그런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미식축구도 했었어요? 라고 당황하던 얼굴이 이내 붉어지면서 화를 냈어.“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여자 따위가 아니에요.”로키가 화를 내며 스티브의 손을 들어서 자신의 가슴에 올려놓았어. 스티브는 당황했어. 로키도 자신의 행동에 당황스러워보였어. 한순간에 열이 받아서 한 행동이었고 로키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스티브는 손바닥 아래에서 빠르게 뛰고 있는 로키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어.

 

04

 

스티브의 기브스를 풀던 날 드디어 스팁과 로키는 데이트를 했어. 굳이 혼자 기브스를 풀고 온 스티브가 로키의 눈 앞에 장미꽃다발을 건네주었어. 꽃다발을 건네받은 로키는 정장차림의 스티브를 보고 스티브답다고 생각했어. 물론 로키도 깔끔한 정장차림이었어.스티브에게선 향수 냄새도 났어. 물론 로키도 마찬가지였지. 사실 내색은 안했지만 둘은 굉장히 긴장하고 설레고 있었어. 뭐 기대하던 것 과는 달리 그리 거창한 데이트는 아니었어. 그냥 미국의 젊은 남녀가 생각하는 정석적인 데이트였어. 스티브가 예약해둔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난 뒤 스티브가 좋아하는 고전영화를 한편 보고 바에 들어가 칵테일을 마셨어. 로키는 스티브의 로맨스적인 면을 높이 샀지만 너무 정석적이잖아. 그래도 음식도 맛있었고 영화는 너무 로맨틱 했지만 스티브가 슬쩍 로키의 손을 잡는 것이 좋았고 바의 분위기는 굉장히 편안하지만 고급스러웠기 때문에 만족스러웠지. 오늘의 데이트를 위해서 스티브가 오랫동안 고심을 한 것은 몰랐지만 다음부터는 다른 곳도 가면 되지,’ 라고 생각하고 같이 다녔어. 로키는 자신이 다음 데이트를 생각하는 것에 살짝 놀랐어.교과서와 같은 데이트가 끝나고 스티브가 로키의 방 문앞 까지 바래다주었어. 같은 건물의 같은 층에 살았기 때문에 살짝 우스운 모양새가 되었지만 스티브는 꿋꿋하게 로키를 바래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지. 로키의 방 문 앞에서 스티브가

"오늘 즐거웠고 다음에 또 데이트 해줘." 라고 말하고 로키의 입술에 살짝 키스를 했어. 로키가 돌아서는 스티브의 팔을 잡고 말했어.

", 잠깐 차라도 마실래요?"

 

 

로키는 자신이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후회했어. 방에 둘만 있는 것도 처음도 아니면서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스티브와 로키는 로키의 침대 위에 앉아서 벽만 쳐다보고 앉아있었어. 당연히 로키의 방에는 책상, 의자, 책꽂이, 옷장이랑 텔레비전,침대, 작은 냉장고가 전부였으니까 말이야. 클럽하우스라지만 차를 마실만한 공간은 당연히 없었지. 스티브가 자기 무릎에 얹은 손을 꼼지락 거렸어. 머릿속으로는 별별 생각이 들었어.

 

어떻게 하지? , 키스를 해야겠지? 그리고...? 첫 번째 데이트인데 벌써 해도 될까?’

내가 먼저 키스를 할까? 아니면 좀 기다려야하나? 왜 붙잡았지? 어색해 죽겠네!’

 

로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차를 내오겠다고 방을 나가서 식당으로 갔어. 로키는 방을 나오면서 자기가 굉장히 바보라고 생각했지. 부엌은 클럽하우스 1층 식당에 있었고 심지어 스티브의 방이 식당과 더 가까웠어. 차를 대접한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어. ? 차 한잔 하고 가라고? 이유를 대도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다니!! 멍청하긴!

 


반면 스티브는 로키가 나가고 난 뒤 로키의 방에서 두리번거렸어. 방안은 삭막했어. 입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방들은 다 똑같았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 왜일까 고민하다가 알아차렸어. 로키의 방에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어. 왜 사진이 없는지는 스티브도 짐작이 갔기 때문에 좀 마음이 아팠어. 그래도 책상위에 스티브가 주었던 장미꽃다발이 놓여져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다음에는 화병을 선물해줘야지, 같이 사진도 많이 찍어야지 라고 스티브는 다짐했어. 이번에는 책꽂이를 살펴보았어. , 인문학, 어학, 경제서적, 철학서, 소설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로 빼곡했어. 그리고 음반이 있었지. 주로 클래식과 재즈, 블루스였어. 그래, 어색할 때는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스티브는 괜찮아 보이는 음악 씨디를 꺼내서 시디플레이어에 넣었어. 근데 자신이 쓰던 기종이 아니라서 헤맸어. 그 사이에 로키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지. 결국 음악을 트는 걸 포기하고 다시 침대에 앉았어.

 

로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가지고 온 찻잔 두 개와 주전자를 책상 위에 올렸어. 로키가 스티브에게 차를 따라주고 난 뒤 따뜻할 때 마셔요.” 라고 말했어. 그 말에 스티브가 김이 나는 홍차를 단숨에 후르륵 마셔버렸어. 스티브의 인상이 찡그려졌어. 로키가 놀라서 미니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왔어.

입 벌려!”

화를 내는 로키에 기세에 눌려서 스티브가 입을 열자 그 안에 얼음을 잔뜩 넣었어.

김 안보여요! 바보 같아서 진짜!”

얼음을 잔뜩 입에 물어서 제대로 발음이 안됐지만 스티브가 대충 미안해.” 라고 하는 것 같았어. 로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얼음조각 하나를 더 꺼내서 스티브의 입술에 슬슬 문질러주었어.

어디 봐봐요. 화상 입은 거 아니에요?”

스티브의 입안을 보니 다행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어. 다만 로키의 손가락이 스티브의 입술에 닿고 있는 것을 둘다 깨달았어. 차가운 얼음이 녹으면서 스티브의 입술에 물기가 어렸고 로키의 손가락도 마찬가지였어. 거기다가 둘이 있는 곳은 침대 위였어. 스티브가 로키의 손을 잡아당겼어. 그리고 키스를 했어. 이전보다 더욱 깊고 짙게. 로키에게 키스를 하는 것은 스티브 로져스였어. 그들의 첫키스였어.

 

둘은 서로의 목을 끌어안으며 키스를 했어. 입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리저리 얽히는 혀와는 다르게 둘의 손길은 다급했어. 로키가 스티브의 셔츠의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고 스티브는 로키의 허리띠를 풀었어. 로키가 허리를 들어 바지를 벗는 것을 도와주었어. 스티브의 손에 의해서 로키의 맨 허벅지가 드러났을 때 타이밍도 좋게 스티브가 걸어놓은 음악이 흘러나왔어. 로키가 웃음을 터트렸어.

하하. 너무 계획적인거 아니에요?”

 

스티브는 왠지 얼굴이 붉어졌어. 애써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로키의 목덜미와 입술에 키스를 계속 했어. 스티브는 로키의 셔츠를 풀면서 드러나는 부분에다가 정중하게 키스를 했어. 스티브의 차가운 입술이 로키의 쇄골에서 가슴 그리고 배꼽으로 내려갈 때마다 로키의 몸이 떨렸어. 스티브가 로키의 배꼽 아래로 입술을 내리면서 브리프를 벗기려고 할 때 로키가 스티브를 저지했어. 로키의 눈에서 두려움이 느껴졌어. 스티브도 남자는 처음이었지만 로키에게 키스를 하고 말해주었어.

니가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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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편  (0) 2012.10.31
Posted by 우훗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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