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칠 거야."
까만머리의 소년이 내게 말했다. 오늘이 할로윈이라는 걸 알리는 듯 간신히 구색 맞춘 초록색 망토 를 걸친(그러고보니 녹색 망토을 걸친 영웅이 있던가.) 소년을 한번 봤다가 우리집 현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앞뜰과 현관, 지붕까지 그 흔한 호박이나 꼬마전구 하나 없는 우리집으로 찾아온 예상치 못한 꼬마손님 앞에서 나는 피자배달부인줄 알고 내민 10달러를 든 손을 감추고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음, 꼬마야. 집을 잘못 찾아온 거 같은데? 미안하지만 우리집에는 사탕같은 거 없어."
그 한마디에 뭐가 그리 놀란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던 소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바보같아! 오늘은 사탕을 주는 날이잖아!"
"우리집은 할로윈을 안 챙기는데. 봐봐, 집 앞에 아무 것도 없고 아무도 안 오지? 차라리 다른 집을 가보지 그래?"
"...다른 집은 이미 다른 유령들이 너무 많아. 이 집이 제일 조용했단 말야."
내게 보인 당돌한 언행과는 달리 수줍음이 많은 소년인 것 같았다. 하긴, 이 시간이면 이미 거리는 이런저런 복장을 한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거다. 아마 다른 애들한테 차례를 뺏겼을지 모르지. 그러고보니 애 부모는 어딨는거야? 설마 이 시간에 혼자서 돌아다니게 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줄 수 있는게 없는걸. 이제 가봐."
"칫, 그러면...장난을 칠 수밖에 없지."
장난을 치겠다며 패기롭게 외치는 꼬마의 모습이 조금은 귀여운 것 같기도 해서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어떤 장난을 칠 건데?"
"벌거벗은 임금님 책 본적 있어?"
소년이 눈을 한번 깜빡이자 순식간에 까만 머리위에 황금색 투구가 씌여지고 소년의 등 뒤에 걸쳐있던 녹색망토 사이로 소년의 키 만한 커다랗고 날카로운 무기가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비현실에 나는 황망해져서 소리조차 지르지도 못했다. 다만 소년의 녹색 눈동자가 무척이나 장난스럽게 반짝이고 있다는 것만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줄게."
그리고 저 소년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해낼 힘도 있고 그럴 의향도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안 돼! 이러다가 정말로 애들이 득실득실한 동네 한복판에서 벌거벗고 돌아다닌다면 정말이지 동네에서 쫓겨날지도 몰라!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면서 주머니를 뒤적였다. 지폐와 동전 몇개, 열쇠꾸러미와 영수증. 그 흔한 껌 하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할 때 그제야 부시럭, 하고 뭔가 손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병원에 갔다가 엉겁결에 받아 온 사탕이 주머니에 하나 있다는 게 기억이 났다. 나는 약간 절박한 심정으로 사탕을 꺼내 소년에게 들이밀었다. 소년은 손바닥 위에 있는 사탕 쪽으로 고개를 숙여 이리저리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닥 마음에 안드는 지 팔짱을 낀 채 곰곰히 생각하던 소년이 낼름 내게서 사탕을 뺏어갔다.
"계피라....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이걸로 참아주지. 내년에는 좀 더 달콤한 걸 준비해놓라고!"
어느새 위협적인 복장은 사라지고 처음처럼 녹색 망토 하나만 걸친 검은머리의 소년이 거리로 뛰어나가며 외쳤다.
"Trick or T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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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배너와 진짜 유령이었던...꼬마로키였는데 왠지 배너같지 않아서 좌절.
여튼, Trick or Treat! 만우절과 할로윈만큼 로키와 어울리는 날도 없지!!
여러분! 연성 안 주면 장난 칠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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