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삶은 도피였다. 집안의 기대에서, '라우다'라는 이름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트랙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레이싱에 뛰어든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첫째, '사업가'와 대척점에 있을 것. 둘째, '사업가' 만큼 돈을 벌 수 있을 것. 그것들만이 이 미친세계로 뛰어든 이유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나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열정이나 호승심따위에 흔들려 승리를 눈 앞에서 놓치는 멍청한 놈들과 달리 나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포인트를 땄고 그것은 스폰서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었다. 손상되지 않는 차. 승리를 따오는 레이서. 페라리에서 날 놓치 않는 것은 당연했다. 가끔씩 나에게 스타성이 없다고 하는 무례한 놈들도 있었지만 나에겐 그런 불만쯤은 흘려들을 수 있는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제임스 헌트 처럼' 이란 소리가 나오면 얘기가 달라졌다.
"제임스 헌트처럼 기자회견장에서 쇼맨쉽을 보여주라고!"
그런 어이없는 말을 내뱉은 매니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순식간에 험악해진 공기에 매니저는 자신의 실언에 대하여 사과를 해왔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를 받아들이는 걸로 일은 일단락 되었지만 사실 나는 전혀 괜찮지 못했다.
"제임스 헌트."
이빨 사이로 그의 이름을 짓이기듯 뇌까렸다. 공공연히 나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애송이(나보다 먼저 데뷔했지만 F1은 내가 선배다. 나이는 내 알바 아니었다.)나와 마주칠때면 나를 향해 little rat 이라며 우스꽝스럽게 구는 것이며(머신을 타기에 작은 게 더 유리했다. ASSHOLE!) 그는 나의 신경을 자꾸 건드렸고 평정심을 깨트렸다. 이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평정심과 절제가 사라진 트랙에는 광기와 무모함만이 남는다. 이성을 잃고 판단을 잘못하면 한순간에 목숨이 날라가는 것이 트랙이었다. 생존확률과 우승확률은 반비례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돈벌이에서 20퍼센트의 확률이면 목숨의 댓가로 충분했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멍청하기 트랙위에서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헌트와의 만남이 있는 날이면 쉽사리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냉정해지자고 몇번이나 자신을 타일렀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라이벌의식때문인가. 나에게도 그런 유치하고 뜨거운 감정이 남아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지만 그런 순수한 감정과는 조금 다른. 기묘한 구석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트랙 위를 돌다가도 돌연 뒷덜미가 선뜩해지는 때가 종종 있다. 백미러에는 익숙해진 멕라렌의 마크가 나를 당장이라도 집어삼킬듯 점차 크기를 더했다. 그럴때마다 그 위협에 벗어나고 싶어 엑셀을 더욱 세게 밟았다. 나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포에 질려 달리는 셈이었다. 굴욕적이었지만 제임스 헌트는 자신의 이름마냥 사냥꾼처럼 나를 쫓아왔다. 서킷을 달리고 있다보면 그를 아예 내칠 수 없었다. 간발의 차이는 나에게 승리를 안겨주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나 마치 사냥꾼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냥감마냥 나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서게 만들긴 충분했다.
게다가 트랙 위에서 뿐만 아니라 점점 제임스 헌트를 만나는 일이 잦아지니 집중이 되지 않았다.
"헤이, 리틀 랫."
역시나 오늘도 웃는 낯짝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들어오는 제임스 헌터와 마주쳤다. 젠장. 어떻게든 태연한척 지나가려고 했지만 결국 헌터가 몇 걸음 앞에 오자 본능처럼 등을 돌렸다.
"Hey! 또 도망치는 거야?"
또. 라는 말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겁쟁이라고 여겨지는 게 분명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천천히 헌트를 향해 돌아섰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도망치는 거 아냐."
발음을 또박또박 눌러가며 아니라고 말해보지만 이 무례한 영국남자는 독일억양이 잔뜩 묻은 내 말을 못알아듣겠다며 speak in English 라고 능청스럽게 말한다. 그러는 지는 외국어 할 줄 하는 것 하나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무례한 섬나라 놈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자 헌트가 배를 잡고 크게 웃어댔다. fuck.fuck.fuck! 상종할 가치가 없는 놈이었다. 등을 돌린 순간 손목을 휘감는 억센 손길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도망가도 끝까지 쫓아가 잡아먹어줄테니 기대하라고."
그의 선전포고에 결국 나는 언제나와 같이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제임스 헌트 처럼' 이란 소리가 나오면 얘기가 달라졌다.
"제임스 헌트처럼 기자회견장에서 쇼맨쉽을 보여주라고!"
그런 어이없는 말을 내뱉은 매니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순식간에 험악해진 공기에 매니저는 자신의 실언에 대하여 사과를 해왔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를 받아들이는 걸로 일은 일단락 되었지만 사실 나는 전혀 괜찮지 못했다.
"제임스 헌트."
이빨 사이로 그의 이름을 짓이기듯 뇌까렸다. 공공연히 나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애송이(나보다 먼저 데뷔했지만 F1은 내가 선배다. 나이는 내 알바 아니었다.)나와 마주칠때면 나를 향해 little rat 이라며 우스꽝스럽게 구는 것이며(머신을 타기에 작은 게 더 유리했다. ASSHOLE!) 그는 나의 신경을 자꾸 건드렸고 평정심을 깨트렸다. 이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평정심과 절제가 사라진 트랙에는 광기와 무모함만이 남는다. 이성을 잃고 판단을 잘못하면 한순간에 목숨이 날라가는 것이 트랙이었다. 생존확률과 우승확률은 반비례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돈벌이에서 20퍼센트의 확률이면 목숨의 댓가로 충분했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멍청하기 트랙위에서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헌트와의 만남이 있는 날이면 쉽사리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냉정해지자고 몇번이나 자신을 타일렀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라이벌의식때문인가. 나에게도 그런 유치하고 뜨거운 감정이 남아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지만 그런 순수한 감정과는 조금 다른. 기묘한 구석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트랙 위를 돌다가도 돌연 뒷덜미가 선뜩해지는 때가 종종 있다. 백미러에는 익숙해진 멕라렌의 마크가 나를 당장이라도 집어삼킬듯 점차 크기를 더했다. 그럴때마다 그 위협에 벗어나고 싶어 엑셀을 더욱 세게 밟았다. 나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포에 질려 달리는 셈이었다. 굴욕적이었지만 제임스 헌트는 자신의 이름마냥 사냥꾼처럼 나를 쫓아왔다. 서킷을 달리고 있다보면 그를 아예 내칠 수 없었다. 간발의 차이는 나에게 승리를 안겨주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나 마치 사냥꾼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냥감마냥 나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서게 만들긴 충분했다.
게다가 트랙 위에서 뿐만 아니라 점점 제임스 헌트를 만나는 일이 잦아지니 집중이 되지 않았다.
"헤이, 리틀 랫."
역시나 오늘도 웃는 낯짝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들어오는 제임스 헌터와 마주쳤다. 젠장. 어떻게든 태연한척 지나가려고 했지만 결국 헌터가 몇 걸음 앞에 오자 본능처럼 등을 돌렸다.
"Hey! 또 도망치는 거야?"
또. 라는 말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겁쟁이라고 여겨지는 게 분명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천천히 헌트를 향해 돌아섰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도망치는 거 아냐."
발음을 또박또박 눌러가며 아니라고 말해보지만 이 무례한 영국남자는 독일억양이 잔뜩 묻은 내 말을 못알아듣겠다며 speak in English 라고 능청스럽게 말한다. 그러는 지는 외국어 할 줄 하는 것 하나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무례한 섬나라 놈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자 헌트가 배를 잡고 크게 웃어댔다. fuck.fuck.fuck! 상종할 가치가 없는 놈이었다. 등을 돌린 순간 손목을 휘감는 억센 손길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도망가도 끝까지 쫓아가 잡아먹어줄테니 기대하라고."
그의 선전포고에 결국 나는 언제나와 같이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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