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
확신컨대 내 머리를 검사해보면 정신병이 있을 것이다. 몸은 무척이나 건강했지만 머리는 항상 맛이 가 있었다. 상대방이 내 결점을 눈치 채기 전에 타고난 멋진 웃음으로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이 점에 있어 멋진 외모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했다.)내 병명은 아마도 애정결핍일 테다. 남들이 듣는다면 섹스중독 이라고 정정해줄지 모르겠지만 내가 섹스를 좋아하는 것은 모두 애정을 원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체온을 원했기에 내게 다가오는 여자들을 거절 할 수 없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상냥했고 부드럽고 향긋한 살결과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형제들은 모두 훌륭한 직업을 가진 어른으로 자랐다. 나를 제외하자면 액자에 걸어놓아도 좋을 만큼 화목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나만이 미운오리새끼처럼 따로 떨어져 삶을 낭비하고 방황했다. 나의 학창시절은 굉장히 소모적이고 지루했다.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빌어먹게도 산만한 아이였고 부모님의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정규교육을 간신히 마친 나는 할릴없이 시간만 죽이다 겨우 지금에서야 적성에 맞은 일을 찾은 것이다. 그 일이 바로 레이싱 이었다. 정상적인 일이라고 하기에는 삶에서 가장 멀고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이 따위인것을. 게다가 잘만 하면 술과 여자와 돈을 엄청나게 받을 수 있으니까 일석이조였다. 물론 그 무엇보다 트랙을 달리다보면 머신이 나를 안아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기계 혹은 괴물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죽음으로 돌진하는 나에게 있어 머신이야말로 유일한 동반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친구>
레이싱을 하고 부터는 슬슬 주위 눈치도 볼 줄 알게 되어서(이 말을 하면 코웃음칠 지 몰라도)친구들이라고 어느정도 말할 수 있는 관계들이 생겼다. 제멋대로에 예민하기 짝이 없는 나를 받아주는 그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물론 지금까지도 유일한 친구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앵무새 한쌍 뿐이었다. 안어울릴지 몰라도 나는 어릴 적부터 작은 동물에 무척 약했다. 특히나 그 작은 앵무새를 한 손에 쥐고 멀리 날아 도망가지 못하도록 잘라버린 뭉툭한 날개죽지를 슬며시 쓸어보며 나는 이런 아름답고 자유로운 영혼이 철창 속에 묶여있음을 애도했고 그렇게 만든 스스로에게 못내 뿌듯함을 느끼고는 했다.
<고민>
최근,그 추악하지만 끝내 지고 가야할 내 성정을 동하게 하는 이가 내 눈앞에 있음을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르는 채로 서있었다. 나는 뱃속 깊숙이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니키 라우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가볍게 몸을 떨던 작은 동물은 몸부림치며 나에게서 달아났지만 처음에는 놓아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뒷모습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그를 낚아채 그 자유로움을 뺏어갈 수 있을까. 그것이 나의 요즘의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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